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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der 감상의 늪/소설-소설가 Posted @2006/03/17 13:22

Under 감상의 늪/소설-소설가 Posted @2006/03/17 13:17
내용을 소개하자면 제가 말 할 수 있는 건 이 정도입니다. 중요한 사실이 마구 빠져 있기야 합니다. 그런 사실에 대해선 언제나처럼 자발적으로 책을 열어서 확인해주십사 부탁드릴 따름입니다.
시귀는 꽤 이전에 한국어판이 나왔지만, 썩 좋은 평을 받은 작품은 아닙니다.
인간의 적인 시귀가 가련하다는 점을 지나치게 부각시킨 것 아니냐는 불만이 리뷰의 지배적인 성향입니다.
사실은 저도 처음 읽었을 때의 기분이라면, 주상의 작품이니까 겨우 별 세개. 라는 안배였을 겁니다.
공포소설이라는데 무섭지는 않고, 무섭지 않은데 찝찝한 여운은 길고.
도무지 그래서 주인공이 누구인지조차도 알 수 없었습니다.
아무래도 주인공일 것 같이 줄기차게 등장하는 세이신이란 인물에 동조할 수 없는 사실이 나를 초조하게 했습니다.
사실 나는 나츠노가 주인공일 거라고 믿었습니다. 이 소설에서 누구보다 주인공에 어울리는 인물이라면 나츠노입니다.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나츠노를 지지하고, 토오루의 참회에 공명합니다.
하지만 주인공은 세이신입니다. 세이신과 스나코. 질서에 반하는 자들.
질서에 반하는 자를 단죄하려는 토시오도 결국은 지켜보는 자였던 게 아닐까 싶습니다.
그리고 포괄적으론 무대가 되는 소토바 자체가 주역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그렇군요, 주인공은 '소토바라는 마을이다' 라는 편이 좋습니다.
나는 여전히 세이신에게 공감할 수 없습니다. 나는 결국 질서 내부의 인간이고, 시귀의 편은 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아주 조금, 그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습니다.
세이신의 기분은 이해한다. 공감은 할 수 없지만 이해는 한다.
라고 말하는 토시오 처럼요. 그리고 내린 결론은 반드시 그에게 동조하지 않아도 좋다는 것. 주인공에게 감정이입 할 수 없다는 건 괴로운 일입니다. 습관처럼 나는 감정이입 하려고 했지만 그건 애초에 무리한 일입니다. 나는 그가 아니니까요. 그 남자처럼은 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내가 소토바의 주민이라면? 이란 생각은 해도 좋을 것 같군요. 개인적으론 마사오에게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고 낭패했습니다.(웃음)
너무 뜬구름 잡는 소리 뿐이니까, 조금 이야기를 바꾸지요.
신조문고에서 나온 주상의 작품은 세 가지.
「마성의 아이」, 「동경이문」, 그리고 바로 이 「시귀」.
마성의 아이의 볼거리는 등장인물이 어떻게 추락해 가는가, 인간이라는 존재가 어디까지 더러울 수 있는가의 신랄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동경이문의 경우는 각 등장인물에 대한 세세한 설정의 묘미. 만화는 놀랍도록 소설의 느낌을 상세하게 전달하고 있지만 전개상 조연들에 대한 설명부분이 누락되어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소설에서는 인물 하나하나를 생생하게 전달하고 있지요.
그리고 그 두 가지의 매력을 복합시킨 완성본이 시귀입니다.
동경이문에선 조연에 대한 언급을 해도 결국은 주배경은 타카츠카사 공작가가 되었고, 확실한 서술자가 있었기 때문에 조연의 역할에는 한계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시귀는 다릅니다. 모든 마을 주민이 동등한 입장에서 이야기는 진행됩니다. 일단은 세이신이 서술자의 역할을 하고는 있지만, 그는 동경이문의 쿠로고 만큼 냉철한 제3자의 입장은 되지 못합니다. 오히려 가장 철저하게 자기 자신의 길만을 걷고, 자신의 틀에서밖에 사건을 볼 수 없습니다. 스나코조차도 사건의 지배자는 되지 못했습니다.
확실히 말해서 오노 후유미는 한 사람의 영웅을 만드는 것보단 그가 존재하는 세계를 구축하는 것에 더 재능이 있습니다.
십이국기를 읽으면서 나는 때때로, 십이국의 주인공은 왕도 기린도 아니라 십이국에 존재하는 일개 民들이다라고 느낄 때가 있습니다. 더불어 십이국의 왕들은 결코 영웅이 아니죠.
인간을 지극히 인간답게 그리는 작가. 그녀의 공포소설이 무서운 점은 거기에 있습니다. 그곳에 괴물이 존재하기 때문이 아니라 그곳에 진짜 인간이 존재하고 있다는 점. 그런 인간의 복합체가 시귀라는 소설에 존재합니다.
나는 완결편인 5권을 보다 몇 번이나 오열했습니다. 공포소설을 보면서 운다는 건 참 이상한 일이지만, 시귀에서 느끼는 공포는 어떤 종류의 비애를 동반합니다. 시귀가 되어서 비로서 자신이 자신의 아내를 얼마나 증오했는지 깨달은 남자의 희열이 무섭고, 단란하게만 보이는 가족이 너무나 손쉽게 깨지는 모습이 슬퍼서 나는 울었습니다. 그저 정말 평범한 사람들. 그 평범한 사람들 속에 숨겨진 지극히 인간다운 그 더러움에 치를 떨었고 그 속에서 발버둥치는 모습이 안타까워서 나는 울었습니다. 나 역시도 결국은 그런 인간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더럽고, 이기적인.
500p 문고판 5권이라는 만만치 않은 볼륨 속에 특유의 압박감이 느껴지는 문장으로 소토바라는 세계를 구축하고 있습니다. 책의 두께도 내용도 전혀 독자에게 상냥하지 않지만, 결국 끝까지 읽어야 겠다는 오기를 생기게 하는 작품입니다. 덧붙여 결론조차도 상냥하지 않습니다.
마성의 아이에서 그랬던 것처럼. 남겨진 것에 대해선 독자 개개인이 생각하고 찾아내는 수 밖에는 없습니다.
요즘 트위터랑 멀어지고 있는데...이유는 PC에서 트위터에 들어가기 귀찮다는게..(먼산)
기다리던 폰이 나오면 지르고 다시 트윗생활도 재개해야죠.
너무 더운데 에어컨 조금 틀어놓고 일하시길.
저는 바쁜 척하며 트위터에서 잉여여하고 있습니다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