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상의 늪/소설-소설가'에 해당되는 글 139

  1. 2010/05/06 유우 우행록 : 누쿠이 도쿠로 (2)
  2. 2010/04/13 유우 행각승 지장 스님의 방랑 : 아리스가와 아리스
  3. 2010/04/07 유우 오카모토 기도 괴담 선집 : 오카모토 기도 (日) (2)
  4. 2010/04/04 유우 신 결혼시대 : 왕하이링 (2)
  5. 2010/04/01 유우 그게 결론이라면, 그걸로 좋다 (8)
  6. 2010/03/29 유우 쾅! 지구에서 7만 광년 : 마크 해던(글, 그림)
  7. 2010/03/29 유우 인형 탐정 시리즈 (1), (2) : 아비코 다케마루
  8. 2010/03/06 유우 고백 : 미나토 가나에
  9. 2010/02/25 유우 잘린 머리에게 물어봐 : 노리즈키 린타로
  10. 2010/01/29 유우 천 년의 침묵 : 이선영
  11. 2010/01/15 유우 다다미 넉 장 반 세계일주 : 모리미 도미히코
  12. 2009/10/15 유우 요무요무, 십이국기 페이지 개설
  13. 2009/10/04 유우 낙조의 옥(落照の獄) : 오노 후유미 (日) (2)
  14. 2009/08/21 유우 용신의 비 : 미치오 슈스케 (日) (4)
  15. 2009/08/13 유우 소년 H : 세노 갓파
  16. 2009/08/04 유우 사슴 남자 : 마키메 마나부 (6)
  17. 2009/08/04 유우 기담─열두 가지의 거짓, 열두 가지의 진실─ : 아사노 아츠코 (2)
  18. 2009/07/09 유우 태양을 끄는 말 / 표지 (4)
  19. 2009/06/15 유우 애도하는 사람 : 덴도 아라타 (日)
  20. 2009/06/04 유우 수은충 : 슈카와 미나토 (2)
  21. 2009/05/18 유우 도피행 : 시노다 세쓰코
  22. 2009/05/07 유우 지나가는 소리 (GH) (4)
  23. 2009/02/04 유우 내 남자 : 사쿠라바 가즈키 (8)
  24. 2008/12/30 유우 "부탁입니다. 죽지 말아 주세요." (2)
  25. 2008/11/17 유우 고양이는 마술사 (정보?) (10)
  26. 2008/11/16 유우 벚꽃지는 계절에 그대를 그리워하네 : 우타노 쇼고 (6)
  27. 2008/11/13 유우 프레자일 한마디 (10)
  28. 2008/10/27 유우 오사카에 있는 가노에게 전화를 걸어… (4)
  29. 2008/09/14 유우 외딴집 : 미야베 미유키 (2)
  30. 2008/08/28 유우 괴이 : 미야베 미유키 (2)

우행록 : 누쿠이 도쿠로

Under 감상의 늪/소설-소설가   Posted @2010/05/06 21:17

우행록 - 10점
누쿠이 도쿠로 지음, 이기웅 옮김/비채

저는 정말 이 책의 리뷰를 쓰고 싶지 않았습니다.
내 치졸한 문장으로 다 읽고 난 후의 이 순수한 두근거림을 망치고 싶지 않아요.
내용에 대해 서투른 수식어를 붙이는 쓸데없는 짓을 하고 싶지 않아요.
깨끗한 '흰색'으로 남겨두고 싶습니다.
괜스레 내 시커먼 발자국을 남기고 싶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무슨 의무감인지 리뷰를 씁니다. 리뷰가 아니라 개인적 감상에 대한 단상이라고 해야 할까요. 요는 수다.
말해 두지만, 이 리뷰는 읽지 않는 게 좋겠습니다.
리뷰를 읽기보다 그냥 책을 읽으세요.


살해당한 일가족.
좋은 직장에 다니는 훤칠한 남편, 누구에게나 예의 바르고 친절한 아름다운 아내,
부부를 똑 닮은 천사 같은 남매를 난도질한 범인.
이 교과서적인 가족에게 과연 누가 원한을 가질 수 있을까?
사람들은 고개를 갸웃하고, 미궁에 빠진 잔인한 사건에 흥미본의의 시선을 보내고, 수군거리고, 제멋대로 논평을 답니다.

좋건 나쁘건, 어떤 식으로든 사람들 기억에 또렷이 남는 죽음.
그리고 소설은 또 하나의 '아주 작은' 죽음을 이야기합니다.
명백하게, 하지만 모든 상황을 위에서 지켜보는 독자들조차 의식하지 못하게.
대다수의 사람이 금세 잊어버릴 흔해빠진 죽음 이야기를.


죽음조차 누군가의 죽음은 오래도록 기억되고, 누군가의 죽음은 가십조차되지 못합니다.
어느 쪽이 더 낫다고는 못하겠네요. 두고두고 오르락내리락하기보다 쉽게 잊히는 죽음이 개인적으로는 좋기도 하고요.
어쨌거나 죽음을 다루는 무게는 죽음마다 다릅니다.

죽음은 어떤 죽음이든 비극인데 말이에요. 똑같은 무게의 비극인데 말이에요.

누구나 삶의 어느 부분에서 돌이킬 수 없이 치명적으로 어리석은 행동을 하듯이.
때로는 그런 어리석은 행동을 치장해서 자기합리화하기도 하고, 평생 괴로워하기도 하고, 어느새 좋은 추억처럼 이상하게 변질되기도 하고, 죽음을 부르기도 하고, 누군가를 죽일 이유가 되기도 하듯이.
죽음도 그런 건데 말이에요.

그런 비극을 여러 사람의 입을 빌려 엮은 이야기입니다.
특이한 방식은 아니지만, 그래도 이런 방식의 이야기는 더러 삼천포로 빠지기도 하고, 판타지가 되기도 하는데, 그에 비해 이 책의 인터뷰어는 착실하게 자신의 원하는 정보를 수집하네요.
나는 이 인터뷰어를 마음대로 상상해봤습니다. 어떤 사람일까, 이 사람은 또 어떤 어리석은 짓을 하며 살았을까.
그는 철저하게 자신을 숨긴 채 그저 묵묵히 사건을 엮어 갑니다.

나는 이 소리없는 남자의 나약함이나, 상냥함이나, 잔인함이 좋았어요.
사건의 심판자이자, 더 큰 어둠의 거미줄에서 버둥거리는 작은 파리 한 마리 같은 그 남자.─그런 사람이 아닐까 멋대로 상상하면서 말이지요.
여러 사람이 말하는 '부부'의 모습이 때로는 180도 달랐듯이, 결국 이야기를 다 읽고 각 인물의 인물상은 독자마다 다 다르게 잡았을 거예요. 어쩔 수 없죠. 우리가 보는 모든 건 다 주관적인 시점이니까요.

지금까지 한 이야기에는 책에 대한 단상도 있고, 문득 떠오른 제 개인적 체험에 대한 단상도 있습니다.
어디까지 책 이야기인지는 이 글을 읽어준 분들의 주관적인 생각에 맡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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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5/06 21:17 2010/05/06 21:17
Posted by 유우

행각승 지장 스님의 방랑 : 아리스가와 아리스

Under 감상의 늪/소설-소설가   Posted @2010/04/13 04:13

행각승 지장 스님의 방랑 - 10점
아리스가와 아리스 지음, 권영주 옮김/비채

아쉽다.
이 책을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아쉽다"는 말로 하고 싶네요.
그러고 보니 아리스가와 아리스 책을 많이 읽은 건 아니지만, 아직까지 빗나간 책은 없었습니다.
일단 캐릭터가 재미있어요.
솔직히 저처럼 트릭이나 범인 찾기에 관심이 없는 독자에게 본격 추리는 매력적인 장르는 아니에요.
하지만 그 언젠가 이야기했듯이, 이런 이야기의 '캐릭터 형성'이 꽤 좋습니다.
주거니 받거니, 끝에는 에헴 하고 살짝 잘난 척하는 탐정님도 귀엽고, 탐정님을 우러러 보는 (서술자를 포함한) 여타의 소시민들도 재미있어요. 그런 부분에서 아리스가와 아리스의 작품은 클리셰한 듯하면서 독특한 맛이 난단 말입니다.

이 소설의 탐정은 "행각승 지장 스님"이십니다.
고행을 찾아서 하는 일본의 슈겐도라는 종교(불교의 일파)의 스님이시죠.
(저는 여기서 《남자에게 차여서 시코쿠라니》의 니나찌를 떠올리고 말았다는, 콜록.)
방랑하는 스님이란 것도 수상한데, 그 차림은(슈겐도 행자의 보통 차림입니다만;) 더더욱 수상하기 짝이 없는. 가사에 염주를 메고, 한 손에 금강지팡이, 허리에 나각.(여기서도 역시 언제 어디서곤 뿌우~하고 나각을 불던 니나찌가 생각났음ㆀ 요는 지장 스님처럼 이상한(?) 사람이…현실에도 있다는 거;;)

그런 사람이 토요일 밤이면, 항상 단골들이 모여 있는 바 '에이프릴'에 와서 네코이가 내미는 '던힐' 담배를 피우고, 언제나 '보헤미안 드림'이라는 칵테일을 마시며, 두 잔째 즈음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이야기를 시작할 때는 서술자인 내가 "이야기를 들려주십시오."라는 운을 떼어야 하지요. 그것이 토요일 에이프릴 바의 규칙.

지장 스님이 방랑하면서 겪은 기이한 살인사건 이야기는 그렇게 매주 이어집니다. 스님이 사건의 전말을 이야기하면, 바에 모인 단골들(=독자)이 범인을 추리합니다. 마지막에 스님이 에헴 하고 결론을 이야기합니다.
여기서 절대로 하지 말아야 할 것. 정말 경험한 일인지 의심하지 말 것.

솔직히 평범한 인간이 이렇게 수십, 수백 건의 살인사건과 '우연히 맞닥뜨'린다면 일본은 씨가 마르겠죠. 살인의 천국이 될 겁니다.(..)

내가 말하자 그는 안주머니에 넣었던 오른손을 꺼냈다. 검은 광택이 흐르는 회전식 권총이 쥐어져 있었다. 이 나라에 권총이 이 정도로 보급되어 있을 줄이야. -p.208~209
권총으로 살해된 전 야쿠자의 사건에서는 이런 말도. 그렇지. 조직원이라면 다들 가지고 있다고 소설에서는 그러지만(..) 너도 나도 권총을 꺼내는 사태에 대해 지장 스님이 먼저 시비를 거십니다. 후후.

정말 그런 가장 무도회가 있었나? 정말 직접 겪었을까? 정말…. 이런 의심을 하면 이야기를 즐길 수 없어요. 이 책을 읽는 독자는 열심히 지장 스님의 말을 기울이면 됩니다. 다른 건 할 필요 없어요! 그게 규칙.
열심히 기울이고 열심히 추론을 펼쳐봅니다. 틀리면 틀리는 대로, 맞으면 맞는 대로 '에헴'입니다. 지장 스님이 다음 주에도 신나게 이야기할 수 있도록 적당히 틀려 주는 것도 미덕입니다.

저처럼 애초에 트릭이나 범인 찾기에 손을 든 독자는 지장 스님의 입담, 범인 찾기로 시끌시끌한 바의 단골의 면면을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즐길 수 있어요.


처음으로 돌아가서.
왜 아쉬운가 하면, 이 이야기가 시리즈가 아니라 이 책으로 완결을 짓기 때문입니다.
매주 이야기를 풀어가던 지장 스님(선생님?)이 없으면 계속될 수 없는 이야기니까요.
마지막은 이렇게 해야 하겠지만, 왜 이렇게 끝내는 걸까. 한 10권쯤 내줘도 될 것을. 이런 욕심이 듭니다.
"그 사람은 분명히 여행하는 추리소설의 화신일 겁니다. 미스터리의 천사예요."
아무렇게나 한 말이건만 일동은 몹시 좋아하며 그 천사를 위해 건배하기로 했다. 마스터를 포함해서 전원이 각자 물 탄 위스키니 진피즈 잔을 들었다.
"천사를 위해."
"천사를 위해."
미스터리의 천사를 위해."
"허튼 이야기를 위해."
"우디릉의 천사를 위해."
"명탐정 지장 선생님을 위해."
술잔이 쨍 하고 맑은 소리를 내며 부딪쳤다.
우리는 모두 그를 사랑했다. -p.362


어느 하늘 아래에선가 또 이야기를 풀어낼 추리소설의 화신, 미스터리의 천사, 지장 스님을 만날 날을 위해, 건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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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4/13 04:13 2010/04/13 04:13
Posted by 유우

오카모토 기도 괴담 선집 : 오카모토 기도 (日)

Under 감상의 늪/소설-소설가   Posted @2010/04/07 04:18

岡本綺堂 怪談選集[文庫] (小學館文庫) (文庫) - 10점
岡本 綺堂/小學館

사랑하고 은혜로운 아오조라 문고를 애용하다가 결국 책으로 모으기 시작했습니다.
역시 글은 책으로 읽어야 맛이 납니다. 최근 열심히 모으는 건 (여전히) 오카모토 기도의 괴담, 기담집.
《한시치》도 좋지만 역시 괴담을 이야기할 때의 오카모토 기도가 아름답다고 느끼는 건,
단순히 제가 이런 이야기를 좋아해서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쨌거나, 너무 많은 괴담을 남겼고, 또 너무 많은 버전으로 나와 있기에 책을 고르기가 매우 어렵습니다만,
저는 아주 속물적으로 아마존에서 가장 많이 팔렸고 비싸지 않은 순서로 책을 고르고 있다는 거. 후후.
(직접 보고 살 수 없으니 어쩔 수 없다고 변명을, 잠시)

이 책에는,

〈도네 나루터(利根の渡)〉
도네의 나루터에 하루도 거르지 않고 사람을 찾는 장님의 집념어린 과거 이야기

〈원 숭이의 눈(猿の眼)〉
눈을 가려 놓은 원숭이 가면 이야기

〈뱀의 정령(蛇精)〉
뱀을 기가 막히게 잡는 땅꾼(..은 사실 아니지만) 부자(父子)의 비밀

〈영험한 우물(清水の井)〉
아름다운 청년이 비치는 우물에는….

〈게(蟹)〉
게의 복수

〈외다리 여자(一本足の女)〉
아름답지만 다리가 하나뿐인 여자의 비밀

〈피리 무덤(笛塚)〉
세상에 둘도 없는 피리를 둘러싼 저주

〈그림자를 밟힌 여자(影を踏まれた女)〉
십오야의 밤에 그림자를 밟혀 미친 여자의 이야기

〈백발귀(百髪鬼)〉
매년 시험장에 나타나는 머리가 하얀 여자

〈요파(妖婆)〉
눈 이 거세게 내리는 날 길가에 구부리고 앉은 기묘한 노파를 둘러싼 무사들의 이야기

〈투구(兜)〉
돌고돌아 한 집안에 다시 돌아오는 투구의 정체

〈장어의 저주를 받은 남자(鰻に呪われた男)〉
장어를 산 채 잡아먹는 남자와 결혼한 여자의 기구한 사연

〈검둥이(くろん 坊)〉
원숭이도 인간도 아닌 '검둥이'가 불러온 한 가족의 참화

이렇게 13편의 괴담이 실렸습니다.
작품 제목만 나열해도 괴담집이란 느낌이 확 들지 않나요?


《한시치 체포록》을 읽어 주신 고마운 분이라면 알겠지만, 오카모토 기도가 풀어놓는 이야기는 쿠쾅! 하고 임팩트가 있지는 않습니다. 이따금 몸이 부르르 떨리는 정도지요. 그렇게 부르르, 부르르, 열 몇 번을 하고 나면 이상하게 오싹한 기분이 스물스물 올라와서 밤을 지새우게 만드는 그런 느낌이요.
'공포'라기보다는 '정체모를 것에 대한 인간적인 혐오감'에 가까울지도 모르겠습니다. 혐오감이라고 하면 또 어폐가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게》도 무서웠고(잠시 게 요리가 먹고 싶어지지 않는 데 효과가 있음), 무엇보다 《백발귀》가 오싹했어요.
《백발귀》의 서술자 '나'는 변호사를 목표로 공부하는 서생 시절, '내'가 사는 하숙집의 주인은 기품 있는 부인입니다. 부인에게는 한 번 시집 갔다 돌아온 아름다운 딸이 있고요. 그 딸과 심상치 않은 관계인 남자는 같은 하숙집에 살고, '내'가 존경하는 선배입니다. 부자에 똑똑하기까지 한 이 선배가 이상하게 변호사 시험에 낙방을 거듭하지요. 결국 고향으로 돌아가기로 한 선배에게 '나'는 그가 시험에서 떨어진 이유를 듣게 됩니다.
매년 시험을 볼 때마다 백발의 여자가 그의 곁에 서 있어서 시험에 집중할 수 없었던 것이죠.
여기까지 매우 흔한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마지막 한마디가 아주 섬뜩한 이야기예요.

정통 괴담을 그리면서도, 그 문체는 여전히 담담하기 이를 데 없고,
때로는 괴담을 과학으로 풀려고 하는 사도 같은 짓마저 오카모토 기도답게 우아합니다.
이야기 하나만 두고 보았을 때는 7,8점 정도인데 여러 편을 모아두면 9점, 10점이 되는 작가예요.
덕분에 그만 오카모토 기도 삼매에서 빠져나와야 하는데 통 못 빠져나오고 있습니다.


그나저나 오카모토 기도의 첫 느낌은 교고쿠 나쓰히코였는데(특히 교고쿠가 미미부쿠로 등의 고전 소설을 완전히 현대적인 감각으로 풀어 놓은 《구 미미부쿠로》 같다는 느낌이었는데), 읽다 보니 그보다는 오노 후유미의 《괴담 초지》가 떠오르네요.
낡은 도시 전설을 뻔뻔하리라 만큼 무미건조하게 엮어나간 이야기집입니다. 무미건조하지만 뜻밖에 따뜻한 이야기나, 눈물 나는 이야기도 많습니다. 괴담이니 도시 전설이란 결국 그런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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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4/07 04:18 2010/04/07 04:18
Posted by 유우

신 결혼시대 : 왕하이링

Under 감상의 늪/소설-소설가   Posted @2010/04/04 02:32

신 결혼시대 - 8점
왕하이링 지음, 홍순도 옮김/비채

젠궈는 어깨에 아주 큼직한 가방을 메고도 다른 손에는 커다란 가방을 더 들고 있었다. 가방 무게로 인해 목이 한쪽으로 기울어진 모습이 완전히 꼴불견이었다. 배용준의 그림자는 고사하고 농촌 출신 도시 근로자로 비쳐지지 않으면 다행일 모습이었다. 샤오시는 젠궈의 그런 모습을 차마 볼 수가 없어 아예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려버렸다. 보지 않으면 속이 상하지도 않을 테니 말이다. -p.256~257
그러고 보니 중국의 현대 소설을 진지하게 읽었던 적이 있었나?
언제나 들춰 보는 것은 역사서나 고전 시가, 이렇게 '중국적인 생활감에 넘치는' 작품을 처음 읽는다는 생각을 문득 했습니다.

낯설지만 어쩐지 반가운 이 느낌. 일본 소설은 워낙 많이 나와 있어서 일본의 '심플한' 가정에 우리는 꽤 익숙해져 있지만, 사실 중국의 이 '복작스러운' 가족 관계가 우리가 더 이해하기 쉬울지도 모르겠습니다.

제목처럼 결혼한 부부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메인은 도시 여자와 시골 남자지만, 그와 얽혀서 두 커플의 애정담(?)이 나옵니다.
솔직히 이 소설을 읽으면서 몇 부분인가는 조금 괴로워하면서, 손을 부들부들 떨면서 읽었습니다. 읽기 어렵다가 아니라 오히려 그 반대라서요. 이 소설의 분위기는 주말 8시에 하는 가족 드라마 같습니다. 가족들이 모여 살면서 생기는 얽히고설킨 관계. '뭐, 저런 시부모가 있어!'라고 화내면서 다음 주를 열심히 기다려서 시간에 맞춰 보고야 마는 그런 드라마요.
전체적인 전개도 드라마 같은 느낌이지만(아니나 다를까 이 작품 원작의 드라마가 중국에서 인기리에 방영했었다고!) 구석구석의 서민적인 냄새가 킁킁 나는 게 참 그렇더군요.

그런 과장된 상황극이 싫다 하시는 분도 계시겠지만, 저는 그게 그렇게 '심한' 과장은 아니라고 생각하거든요.
화를 내면서도 보게 되는 건 역시 어딘가 내 처지(혹은 내 주변의 누군가의 처지)와 비슷한 구석을 느끼기 때문이고, 그렇기에 등장인물이 대신 언젠가 역경을 딪고 행복을 찾는 모습에 대리만족을 기대하고 마는 것이겠지요.

저 역시 시골에서 어렵게 공부해 베이징에 올라와 성실히 사는 젠궈와 천상 도시 태생 여자인 샤오시의 부부 관계에서, 어릴 적 일들을 많이 떠올렸습니다. 굳이 여기서 가족사를 들출 생각은 없지만(웃음).
균등한 발전 어쩌고 하더라도, 지금까지 우리나라도 지방과 도시의 차는 명백히 있습니다. 결혼이라는 것으로, 전혀 다른 환경의 사람들이 가족이라는 더 할 나위 없는 가까운 사이로 맺어졌을 때 그 차이는 치명적일 수도 있죠. 책 뒤표지에는 이런 말이 있습니다.

"결혼은 두 사람의 만남이 아니라 두 사회의 결합이야. 네가 시골남자에게 시집가면 너는 물론 부모까지 시골사람이 되는 거라고!"
와와와. 극단적인 말이네요. 하지만 이 말을 '아니다'라고 부정할 수 있을까요? 이 말에 옳소, 그렇소, 암요, 하고 말하려는 게 아닙니다. 이와 똑같은 문제가 제 주변에, 그리고 아마 누구나의 주변에 흔히 일어나고 있다는 거죠. 편견, 오해, 남들이 보기에 무척 사소해 보이는 작은 차이를 끝내 극복하지 못하는 결혼이 말예요.
결혼할 나이가 되니, 참 이런 소설이 남일 같지 않아서 이렇게 흥분을…=_=ㆀ

눈이 돌아갈 만큼 화려하고 아름다운 연애 이야기도 아니고, 오히려 '그럴 줄 알았어! 악!' 하는 전개의 연속이지만, 읽는 내내 지루하지 않고, 읽고 나서도 개운합니다. 어쨌거나 해피 엔딩인 드라마처럼 말이죠.
중간중간 배용준이나 잘 사는 나라 한국 이야기가 나와서 미묘한 웃음 포인트를 자극하기도 하고. 후훗.
중국 소설, 하면 떠올리는 '어려울 것 같은' 느낌은 전혀 없습니다. 그러면서도 중국스러운 느낌(?)이 드니, 처음 접하기에 좋은 소설일 듯하여요.

그나저나 중국의 생활 수준이 우리보다 떨어질지는 모르겠지만, 남자가 자연스럽게 집안일을 하는 모습은 정말 부러웠습니다. 이러면 결혼도 괜찮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잠시.
(걱정마세요. 저는 평생 개랑 같이 엄마에게 빌붙어 살 예정, 콜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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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4/04 02:32 2010/04/04 02:32
Posted by 유우

그게 결론이라면, 그걸로 좋다

Under 감상의 늪/소설-소설가   Posted @2010/04/01 17:33

<레이디 조커> 문고판 받았습니다.
제대로 즐기려면 뒤를 보지 않고 차근차근 읽어나가야겠지만,
늘 사도를 꿈꾸는 저는 종장을 먼저 읽었습니다.
얘기대로 정말 가필수정된 게 보이더군요.

*이하 스포일러와 망상이 잔뜩*



만우절 농담 같지만 정말 문고판 가필수정 이렇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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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4/01 17:33 2010/04/01 17:33
Posted by 유우

쾅! 지구에서 7만 광년 : 마크 해던(글, 그림)

Under 감상의 늪/소설-소설가   Posted @2010/03/29 03:08

쾅! 지구에서 7만 광년 - 8점
마크 해던 지음, 김지현 옮김/비채

"그러면 이 장소……, 이 행성……, 이건……."
"털석."
"뭐라고?"
"털썩. 그게 이름이야." 브리트니가 다리 하나를 삭막한 풍경에 대고 흔들었다.
"털썩!? 내가 들어본 이름 중 최고로 한심하네."
브리트니는 단호하고 화가 난 표정을 지었다. "그건 우리 말로는 가장 심각하고도 찬란한 이름이라고."
"아."
"너네는 '달'이라는 말이 있지? 그건 우리말로 하면 방귀를 뿡뿡 뀐다는 뜻이야."
-p.232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악동'인 짐보와 짐보에 뒤지지 않는 악동 찰리,
짐보와 물어뜯기가 일상인 철없는 누나 베키가
지구 정복을 꿈꾸는 외계인 선생님으로부터 지구를 지키는 이야기.

무슨 밑도 끝도 없는 황당한 줄거리 요약이냐고 해도, 정말 이런 내용이니까 하는 수 없습니다.
조금 뻔하지만 뻔하지 않게 유쾌한 소설이죠.

이야기 속에 나오는 인물들은 다 문제투성이에, 엉망진창입니다.
실직한 짐보의 아빠. 프라모델에 미쳐서 집안일은 나 몰라라.
실직 전의 아빠보다 더 잘 버는 엄마와 이혼할 위기를 느낄 만큼 요리 솜씨가 형편없는 남자죠.
그런데 짐보가 용돈을 털어 사온 요리책을 보더니, 나중에는 무슨 요리왕이 될 기세로….
요리책 하나로 가능한 거야? 아니, 그럼 그 전에 요리는 대충 마음 내키는 대로 해서 그 지경이었던 거야?
여러모로 추궁해보고 싶지만, 중요한 부분은 아니니 넘어가기로 합시다.

남자들이 약간 오타쿠 기질이 충만하다면, 여자들은 다소 '과격파' 쪽인 것 같아요.
프라이팬을 마구 던지는 찰리의 엄마나…. '털썩 성'에는 가지 않았지만 훌륭하게 외계인을 후려쳐서 퇴치한(..) 베키나.
그런 캐릭터가 뒤죽박죽 얽혀서 뜻밖에 절묘한 균형을 이룹니다.

비채에서 나온 책은 대부분 만듦새가 감각적이고, 예쁘지만, 이 책은 그중에서도 좀 튑니다.
책 중간중간의 아기자기한 소품들(마크 해던 글, 그림으로 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작가의 그림인 듯!),
큼직큼직한 만듦새가 눈에 확 뜁니다. 시원시원한 전개와도 어울리고요.

일단 청소년 소설로 분류되어 있습니다만,
저는 굳이 이 책을 읽으면 좋은 연령층을 꼽자면 10대 후반~30대 중반으로 하고 싶군요.
물론 이 시원시원한 전개의 리듬을 가장 신나게 탈 수 있는 연령은 그보다 좀 더 아래인지도 모르겠지만,
《은하수..히치하이커》를 떠오르게 하는 말장난의 묘미는 오히려 성인용이 아닌가 싶기도 해요.
요컨대 읽는 연령대에 따라 재미의 포인트가 달라집니다.

저한테 '청소년 소설'은 오히려 더 음울하고 고난스러운 느낌인데, 이 책은 처음부터 끝까지 유쾌했습니다.
굳이 어리지 않아도, 굳이 SF 팬이 아니더라도, 한바탕 신나게 즐길 만한 책입니다. 더불어 선물용으로도 유용할 것 같네요, 후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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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3/29 03:08 2010/03/29 03:08
Posted by 유우

인형 탐정 시리즈 (1), (2) : 아비코 다케마루

Under 감상의 늪/소설-소설가   Posted @2010/03/29 02:56


인형, 탐정이 되다 - 7점
소풍 버스 납치 사건 - 9점
아비코 타케마루 지음, 최고은 옮김/북홀릭(bookholic)

아비코 다케마루라고 하면 일단 《살육에 이르는 병》이라는 제목부터 음산한 책을 떠올리는 게 보통이겠지요.
전 사실 아비코 다케마루라고 하면, 조반센(도쿄에서 미토로 가는 전차 노선) 역 중 하나인 '아비코 역'(..)과 오노 주상을 '누님'으로 모시는 귀여운 후배라는 이미지가 먼저 각인된 인간입니다. 늘 그렇듯이 이쪽 패밀리(?)는 책을 읽기 전에 주상의 인터뷰나 주상에 대한 코멘트로 먼저 알게 되었으므로(..).
첫인상만으로 따지면 《살육..》보다 《인형 탐정 시리즈》 쪽이 제 안의 '아비코 다케마루'와 더 어울렸을지도 모르겠네요. 어쨌거나 이 표지를 보고 깜짝 놀라기는 했습니다.
표지가 잘못 된 건 아닌가 하는데, 옆 사무실 K님께서 '표지 그대로의 내용이다!'라고 강력 추천했던 게 생각나서 2월의 어느 무료한 날 이 책을 덥썩 집었습니다.

아, 올해 들어 읽은 책 중 가장 유쾌했어요.
주인공이 유치원 교사와 어른이 되다 만 듯한(..) 인형사(복화술사) 청년&청년의 파트너인 인형이다 보니 아무래도 좀 헐렁헐렁~한 이야기이기는 하지만요.
기본적으로 약간 맥이 빠지는 이 템포가 좋았어요. 긴장감 넘치고, 머리를 쥐어짜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잘 정돈된 이야기니까요.

첫 권인 《인형, 탐정이 되다》는 주인공들의 만남과 몇 가지 사건을 해결하는 단편집이고,
《소풍 버스 납치 사건》은 유치원 소풍날 일어나는 해프닝을 다룬 장편입니다.

《인형, 탐정이 되다》는 솔직히 오노 주상의 저주받은 괴작(..) 《생일 전야..》를 떠올리게 해서….
아니, 뭐. 그 작품처럼 엉망진창은 아니었지만…. 그러니까 두 사람이 사랑에 빠지는 이 패턴이…!!!!
분명히 역경도 고난도 없지만, 진도도 안 나갈 것 같은 두 사람의 연애 방식이…!!!!!!
아, 오글오글한 손발을 펴가면서 실컷 웃었습니다.

《소풍 버스 납치 사건》은 두 번째 권이기 때문인지, 장편이기 때문인지, 내용이 더 안정감 있게 흘러갑니다.
두 사람의 헐렁~한 관계도 슬슬 적응이 되고, 얄미운 사랑의 방해꾼(?) 또는 라이벌(??) 인형 마리오의 막말도 귀엽고 말이죠!
뭐, 연인으로 진도가 안 나가도, 이렇게 셋이 알콩달콩(..) 살아도 좋겠다 싶습니다만.

물론 그러면 안 되겠죠. 후반부에 깜짝 강력 라이벌도 출연했고. 아시다시피 제가 야쿠자에 좀 약합니다ㆀ 자칫하면 이쪽 노선으로 응원할지도 모르니, 요시오 군, 분발 좀 해 주시길.

국내에는 일단 위의 두 권이 나와 있고, 3, 4권도 발매 예정. 알라딘 '새로나올 책'에 3권이 6월 발매 예정으로 되어 있는데 과연 어찌 될지요. 여하튼 여름 즈음에는 이 유쾌한 이야기의 뒤를 읽을 수 있으리라 기대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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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3/29 02:56 2010/03/29 02:56
Posted by 유우

고백 : 미나토 가나에

Under 감상의 늪/소설-소설가   Posted @2010/03/06 03:07

고백 - 7점
미나토 가나에 지음, 김선영 옮김/비채

화제의 신인 미나토 가나에의 대표작이자 데뷔작입니다.
출판사에 다니면서 이 작품 샘플 번역을 수차례 받았을 정도로 여러모로 눈에 띄는 작가, 눈에 띄는 작품이에요.

“내 딸 마나미는 사고로 죽은 것이 아니라 살해당했습니다. 그 범인은 바로 우리 반에 있습니다.”
라는 다소 쇼킹한 광고문구도 눈에 띄는 데 한몫하겠지요.

줄거리 자체는 아주 단순합니다. 싱글맘인 중학교 담임교사의 어린 딸이 학교 수영장에서 죽은 채 발견되었는데, 사고사로 처리된 이 사건이 사실은 교사네 반 아이 둘에 의한 살인이었음을 '고백'하는 이야기입니다.
챕터 별로 교사, 범인 소년 A, B, 동급생, 범인의 가족이 사건 전후의 이야기를 하는 형식도 독특합니다.
요즘은 이렇게 데뷔작부터 충격적(또는 자극적)인 소재로 주목을 끄는 작가가 많아진 것 같아요.

다만 아시다시피 저는 충격적인 소재에 충격받는 일이 거의 없습니다.
사실 이 소설도 어디에서 놀라야 할지 조금 고민되었습니다. 결과적으로 놀랍거나 하지는 않았어요.

다분히 거부감을 일으킬 만한 소재를 읽기 쉽게 요리한 점은 칭찬할 만합니다만.
아니, 읽기 쉽다고 하는 건 어폐가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분명히 이 이야기는 처음부터 어쩐지 '꺼려지는 무언가'가 있습니다.
고백 형식이란 것도 어찌 보면 산만할 수도 있고요. 읽는 중에 속도감도 잘 느껴지지 않는데,
붙잡으면 순식간에 끝까지 읽게 하는 이상한 마력이 있습니다. '꺼려지지만 잘 읽히는', '속도가 안 나는 것 같은데 어느새 다 읽어버리는' 그런 오묘한 책입니다.
데뷔작으로서 훌륭한 수준입니다. 하지만 여기서 그치면 곤란합니다.

데뷔작으로서 훌륭하지만, 배경 없이 작품만으로 봤을 때 아쉬움도 큽니다.
일단 공감대를 형성하기 어렵다는 게 가장 큰 문제인 것 같네요. 누구나 공감하기 쉬운, 일상적인, 평범한, 그 속에서 팡 하고 일어나야 충격적인데, 이 소설에는 너무나 비현실적인 설정이 겹치고 또 겹치고 다시 겹치다 보니 막상 팡 하고 터질 때의 감흥도 수조 속 일처럼 느껴집니다.
어디선가 많이 본 한 때 불량학생이었지만 이제는 아이들을 선도하는 열혈 선생, 에이즈환자, 미혼모, 그런데 이 미혼모의 정혼자였던 사람이 바로 그 에이즈에 걸린 열혈 선생, 그리고 미혼모 담임의 후임으로 온 선생님이 열혈 선생의 제자…이런 설정이 억지스럽다 못해 개그처럼 느껴집니다. 만약 작가의 의도(유머)라면 또 모를까, 이건 좀 아니잖아요?;

치밀하게 짜인 듯하지만 실상은 등장인물 간의 접점이 약한 듯한 느낌도 드는데요. 고백이라는 형식을 취함으로써 각자의 시선에서 사건을 볼 수 있는 건 좋았지만, 그 인물과 인물 사이에 좀 더 치열한 무언가가 아쉽습니다.
작가의 문장이 더 밀도가 높았다면, 더 간절했다면 약간의 억지스러운 설정은 넘어갈 수 있었을 텐데.
아직 그 정도로 문장이 농익지는 않았더군요. 충격적으로 보일 단어를 고르기 위해 노력했음은 충분히 엿보였지만, 그 단어를 잘 요리하는 법은 아직 서툰 부분이 있는 것 같아요. 물론 데뷔작인데 문장까지 화려하면 귀염성이 없겠지만.


그런 단점들을 두고도 화제를 충분히 끌 만한 작품이었고,
어쩌면 그런 단점이 있기 때문에(덜 치밀했기 때문에) 피곤하지 않게 잘 읽히는 소설이 되었는지도 모릅니다.
설마 이것도 다 작가의 계산은 아니겠지…?(그렇담 정말 무서운 작가다;;)

첫발을 내딛고, 너무 많은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탓에 여기서 정체하고 마는 일은 없기를 바랍니다.
그렇지 않다면 앞으로의 성장을 기대해봐도 좋을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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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3/06 03:07 2010/03/06 03:07
Posted by 유우

잘린 머리에게 물어봐 : 노리즈키 린타로

Under 감상의 늪/소설-소설가   Posted @2010/02/25 12:52

잘린 머리에게 물어봐 - 10점
노리즈키 린타로 지음, 최고은 옮김/비채


아름다운 처녀 메두사—아름답기에 신의 사랑을 받은 처녀,
신의 사랑을 받은 탓에 저주받은 처녀.
누구나 메두사를 마음속에 품었지만, 그것은 말 그대로 절대로 보려고 해서는 안 되는 부분인지도 모릅니다.
진실이 꼭 불행을 막아주는 방패가 되지는 않는 것처럼 말이지요.


린타로는 역 안에서 전화번호부가 놓인 공중전화를 찾았다. 지금은 멸종 위기에 처한 종족이라 얼마 남지 않은 생존자를 찾아내기까지 무척이나 고생했다. 앞으로도 계속 이 속도로 거리에서 철거된다면, 문화재보호법 대상으로 지정되어도 이상하지 않을 것이다. -p.234

중심 내용과 아무 상관도 없는 부분을 인용해 보았습니다. 내용과는 직접적인 관계가 없지만, 글의 분위기를 전하기는 딱 좋은 부분이 아닐까 싶어요. 주제는 무겁지만, 문장이 유쾌합니다. 읽다 보면 책의 두께를 느끼기 어려울 정도로 빠르게 진도가 나가죠.

추리소설가이자 탐정 노리즈키 린타로는 우연히 저명한 조각가 가와시마 이사쿠의 죽음에 관여하게 됩니다. 이사쿠는 한없이 자연사에 가까운 죽음이었지만, 문제는 그가 죽기 직전에 완성한 마지막 작품에 있었죠. 장례식으로 바쁜 와중에 마지막 작품, 이사쿠의 아름다운 외동딸, 에치카의 나신 조각상의 머리 부분을 누군가 댕강 잘라가 버린 겁니다.
누가 ‘머리를 잘랐는지’, 왜 ‘잘랐는지’, ‘잘린 머리’는 대체 어디에 있는지?

사건은 이렇게 시작됩니다. 이후 조각상의 모델이 된 에치카가 실종되고 16년 전 사건이 얽히면서… 이러저러한 자세한 내용은 직접 확인하시고.(후후)

재미보다 트릭보다 제가 놀란 것은 이 작품이 국내에 처음으로 소개된 노리즈키 린타로의 장편소설이란 점이었습니다. 요즘 일본추리소설 팬이라면 너도나도 ‘신본격!’을 외치지만 사실상 신본격의 기수라 불리는 작가의 작품은 매우 느릿느릿 들어오고 있어요. 본격이 일반 독자에게 여전히 자리 잡지 않았다는 반증이기도 하지요. 일반 독자에게는 여전히 본격이 낯선 가운데, 일본추리소설이 나오는 모습을 보면 광고 문구에는 ‘본격’이란 말을 엄청나게 어필하는 게 또 아이러니입니다. 다행이랄지, 근래 들어 이름만 무성하던 작가의 작품이 열심히 나와 주는 걸 보면, 이제 다들 말만 ‘본격 본격’이 아니라, 정말 본격을 원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기시 유스케 : 결코 다른 미스터리를 비판하려는 건 아닙니다만, 본격 미스터리는 처음 읽었을 때의 놀라움이 전부라는 이미지가 있었죠. 그렇지만 잘 만들어진 본격 미스터리는 몇 번이고 다시 읽어도 재미있습니다. 트릭을 알고 있는 상태에서 읽어도 무척이나 세밀한 복선을 즐길 수 있더군요.
-p.538(노리즈키 린타로 인터뷰 by 기시 유스케)

소설 뒤에 작가와 기시 유스케의 대담을 실은 것은 탁월했습니다. 저는 특히 기시 유스케의 이 말이 인상 깊은데, 사실 저도 예전에는 그놈의 ‘본격’이 도통 좋아지질 않았습니다.
본격은 여운이 없는 소설이라고 생각했지요. 솔직히 저처럼 트릭이 얼마나 정교한지, 범인이 얼마나 천재적인지, 심지어 범인이 누구인지조차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사람에게 본격은 큰 매력이 없어요. 누가 범인이든 별로 중요하지 않고, 그렇게 놀라지도 않는 인간이니까요.(그러면서 무척 사소한 일에 패닉에 빠질 정도로 경악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요게요게, 읽다 보니 매력이 새록새록 보이는 장르인 것 같습니다. 일단 인물들 하나하나가 매력적이고요.
특히 이 소설의 탐정, 명탐정이라기는 미묘하게 무능한 린타로 군.
헛다리를 한 번 두 번 마구 짚더니, 잔챙이 악당의 연기에 껌뻑 속기도 하고, 결국 아버지 노리즈키 경시에게 혼나는 못난 아들. 이건 뭐야, 눈썰미는 좋지만, 탐정이 아니라 그냥 오지랖이 좀 넓은 것뿐이잖아, 라는 비난을 받아도 마땅한 주인공의 좌충우돌 행태가, 매우 귀엽습니다.
등장인물이 다 죽도록 팔 꼬고 있다가 그럴 줄 알았다며 자신의 천재성을 증명하는 탐정보다 훨씬 인간적이고요.


노리즈키 린타로 : 사람들 사이에 오해가 발생하는 과정을, 깜빡하고 내릴 역을 지나치는 감각처럼 써보고 싶었습니다.
-p.541(노리즈키 린타로 인터뷰 by 기시 유스케)

아하, 그렇군요. ‘사람들 사이의 오해’에서 ‘사람들’은 독자를 포함한 사람들일까요? 벅적벅적한 사람들 사이에 끼어서 독자도 오해에 한몫하는 것이 이 소설의 매력입니다. 치열하게 범인이 누군가를 생각하지 말고, 열심히 속아보는 건 어떠신가요?
헛다리 짚는 우리의 탐정과 함께 독자도 이리 갔다 저리 갔다 정신없이 돌다보니 뜻밖의 진실을 씁쓸한 뒷맛과 함께 맞이하는 것도 나쁘지 않아요.

작품 안에 조각에 대한 전문적인 이야기가 많이 나오는데, 그것이 굳이 가독성을 방해한다고 보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흥미로운 퍼즐이 되죠. 물론 원서로 읽었다면 머리를 감싸 쥐었겠습니다마는. 작가의 치밀한, 주인공의 조금은 엉성한 인간미…하지만 무엇보다 이 이야기에서 전율을 느낀 요소는, 추리를 떠나서 매우 훌륭한 가족 애증극이라는 사실이지요! 메두사라는 소재만으로 저는 충분했는데, 마지막 장을 덮은 순간 150% 충전한 듯한 떨림을 맛보았습니다. 본격 추리로서의 훌륭함은 물론이지만, 그 이전에 매우 아름다운 작품이란 사실을 이야기하고 싶어요. 추리소설, 본격, 이런 말은 크게 신경 쓰지 않아도 됩니다. 그냥 이야기 자체로 즐길 수 있는 힘이 있으니까요. 오랜만에 만족스러운 독서였습니다.
이걸 계기로 노리즈키 린타로 작품이 밀물처럼 쏟아지기를 바라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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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2/25 12:52 2010/02/25 12:52
Posted by 유우

천 년의 침묵 : 이선영

Under 감상의 늪/소설-소설가   Posted @2010/01/29 04:48

천 년의 침묵 - 8점
이선영 지음/김영사


현자 피타고라스와 절대적인 신성 지역인 현자의 학파.
올곧고 우직했던 현자의 수제자 디오도로스가 괴한에게 살해당하면서 이야기는 시작합니다.

'비밀의 수를 가진 자가 세상을 지배하리라' 라는 책 표지의 문구며,
제목 <천 년의 침묵>이 가리키는 '피타고라스의 정의'에 대한 진실을 파헤친다는 부분에서
<다빈치 코드>를 떠올릴 수밖에 없는 근질근질함이 느껴집니다.
이런 광고가 분명히 대중에게 크게 어필하겠지만 이것때문에 꺼리는 분도 생기겠지요.
저도 사실 후자의 입장이었습니다만, 일단 손에 들으니 참 잘 읽히더군요.
오호, 역시 책은 뭐니뭐니해도 잘 읽히는 게 우선입니다.

수학을 소재로 했다는 것 때문에 상당히 차가운 소설일 것 같다는 느낌이었고,
초반부는 확실히 그러했습니다만,
결론적으로 저는 굉장히 끈적끈적하게 읽었습니다. 아니, 이상하다는 말이 아니고요.
버석버석 메마르지 않고 적당히 수분을 함유했다는 말입니다.

수학적인 이야기가 주르륵 나오다가
─다행히 머리를 쥐어뜯을 이야기는 아니고,
오히려 지금 우리는 아주 기초적이고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들인데,
이런 부분이 소설의 매력을 더합니다. 우리에게 당연한 것을(사실 당연하게 여기면 안 되는지도 모르지만)
신성하게 여기고 환희하고 의심하고 연구하는 모습이
소설의 배경 속으로 독자를 빨려들어가게 하는데 지대한 공헌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불현듯 아네모네 타령에, 이게 뭔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하지만 분명히 사랑이 이 소설의 또 다른 테마이고, 저는 오히려 수의 비밀을 찾는 숨막히는 전개보다
그 물밑에 흐르는 갖가지 아름답거나 추악한 애정의 행태가 더 신경 쓰였습니다.
'아네모네'라는 말로 경고했듯이 어느 연인도 행복한 길을 걷지는 못하지만요.

사내들은 많은 것을 위해 살고 또 죽는다. 명예, 권력, 더 높은 지혜와 지식…… 그 같은 이름을 붙여 자신의 존재를 높이고 싶어 한다. 그러나 눈앞의 이 여인은 오직 사랑만을 좇고 있다. 조금도 부끄러워하지 않고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미안한 줄도 모른 채 또 한 사람을 수렁으로 몰아넣고 있다. -p.223

현자의 정숙한 아내이자 두 제자의 연인인 테아노의 데일 듯한 사랑이며

사랑의 궁극은 물이지요, 물!
(중략)
"무릇 남녀 간의 사랑이란 물처럼 만난 후 흘러가 넓은 대양에 이르는 것이겠지. 그러나 너와 나의 사랑은 불이니라. 뜨거움으로 화르르 타올라 종국에는 재와 연기밖에 남지 않는 것이지." -p.248

제 손을 피로 물들이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는 어린아이처럼 잔인하고 순수한 에우니케의 사랑이며
사랑보다 욕망으로 가득했던 코레의 사랑이며
조용하고 영민하지만 업보로 가득했던 다모의 사랑이 책 안 보이지 않는 구석구석 이야기를 물들이고 있습니다.
아, 참으로 애욕적인 소설입니다. 이 소설을 이렇게 읽는 사람이 저 말고 얼마나 되는지 알 수 없지만(..)
이렇게 읽든 저렇게 읽든 재미있게 책을 읽고, 재미있는 책을 써 준 작가에게 감사할 줄 알면 되는 거라고 (제멋대로) 믿습니다.

살인사건의 배후는 일단 책 소개만 봐도 누구인지 자명하고,
선과 악이 제법 또렷하게 나뉘어져 있지만, 개인적으로 밉게 느껴지는 사람은 없더군요.
그림자가 엄청나게 희미했던(이게 이 사람의 속성인 듯;) 카리톤 같은 인물도 꽤 좋아합니다. 실제로 있다면 절대 친구하고 싶지 않지만요.

많은 이야기가 오가고 많은 등장인물이 나왔는데 책은 너무 짧네요. 금방 읽혀서 좋았지만요.
좀 더 인물들의 갈등이나 정욕이나 슬픔이나 욕망 같은 게 치열하게 전개되었다면
'천 년의 침묵'이 가진 의미도 더 무거워지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과하지 않았지만, 부족한 부분은 분명 있었습니다.
그 부족한 부분을 하나하나 채워나갈 앞으로의 행보가 기대되는 작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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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1/29 04:48 2010/01/29 04:48
Posted by 유우

다다미 넉 장 반 세계일주 : 모리미 도미히코

Under 감상의 늪/소설-소설가   Posted @2010/01/15 02:42

다다미 넉장반 세계일주 - 10점
모리미 도미히코 지음, 권영주 옮김/비채

다다미 넉 장 반, 책상 하나와 침대 하나가 들어가면 꽉 차는 넓이.
둘이 자려면 서로 발을 보고 자야 한다는 바로 그 넓이.
길을 잃고 구룡성에 들어왔다고 착각하게 하는 다 쓰러져 가는 3층 목조 건물, 꾀죄죄한 다다미방(나는 여기에 다다미 벌레가 살고 있음을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설명만으로 퀴퀴한 지린내가 날 것 같은 이 방이 주인공의 대학 생활을 함께 보낸 끈끈한 동반자입니다.

그리고 지금 여기, 또 다른 악연의 동반자가 있지요. 갓 태어났을 때는 천사와도 같던 ‘나’를 메피스토펠레스처럼 바꾼 것은 다름 아닌 영화 동아리 ‘계’, 히구치 스승님의 제자, 묘한 동아리 ‘포그니’, 비밀 조직 ‘복묘 반점’에 가입한 탓이고, 그곳에서 만난 타기할 벗 오즈 때문입니다.

왜 이렇게 가입한 동아리가 많은가 하면. 사실 주인공이 가입한 동아리는 한 군데뿐이에요.
이 소설이 정신없이 재미있는 이유는 여기에 있습니다(재미도 있지만, 정말 정신도 없음).
소설은 4개의 챕터로 구성되어 있는데, 한 챕터가 일단락되고 앞으로 어떤 전개가 될까 두근두근 다음 장을 넘기면, 끝없는 기시감의 향연이. 이야기가 반복됩니다. 어디선가 읽었던 문장들이 두두두두 하고 뻔뻔스럽게 펼쳐집니다.
그렇습니다! 이야기가 처음으로 다시 돌아가 있어요. 변한 것은 ‘내’가 속해 있는 동아리뿐이고요.
속한 동아리는 바뀌었으나 나는 여전히 썩어가는 청춘이고, 사나이의 육즙이 흠뻑 밴 다다미방에 살고 있으며, 여자친구도 없고, 타기할 벗 오즈와 친구 사이입니다.

권영주 선생님이 번역 후기에서도 말했듯이 마치 여러 선택지가 있는 시뮬레이션 게임을 하는 것처럼 주인공은 4가지의 선택지 사이에서 쓰디쓴 청춘을 맛봅니다. 그러나 처한 위치(=속한 동아리)가 바뀌니 시선이 조금 바뀌면서 한 이야기로만은 알 수 없었던 인물들의 비밀이 감질 나게 벗겨지지요. 읽는 것을 멈출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마지막 이야기 〈80일간의 다다미 넉 장 반 일주〉에서 ‘나’는 해피 엔딩을 맞습니다. 물론 상황이 크게 바뀐 건 아니지만. 아니, 다다미 넉 장 반에서 나온 것은 엄청난 혁명이라고 해야 할까요.
하지만 타기할 벗 오즈가 함께하는 이상 ‘나'의 대학생활이 꽃처럼 향기롭지는 않을 터. 그래도 뭐, 나름 좋지 않습니까. 그것도 다 청춘이니까.
동해 번쩍 서해 번쩍, 정말 인간이 아니라 누라리횽이 아닌가 싶은 오즈의 인간다운 모습(?)도 마지막에 살짝 엿볼 수 있었고, 아카시 군이라는 여자친구도 생겼으니 우리의 주인공도 조금쯤 철이 들 날이 올지 모르겠습니다.

‘교토 작가’라는 별명답게 작품마다 교토의 모든 부분을 남김없이 활용합니다. 개인적으로 또 다른 '교토 작가' 마키메 마나부보다 모리미 도미히코의 교토가 더 마음에 듭니다.
모리미 도미히코의 작품을 읽고 나면, 너도나도 가는 은각사, 금각사가 아니라 나무 냄새 나는 뒷골목 사이를 아주 숨가쁘게 달리고 난 느낌이 들거든요.

항상 교토를 노숙자처럼 여행해서 그런지 저에게 교토는 뭐랄까 제 청춘의 가난한 한 페이지예요.
이 소설 속의 쪄든 청춘을 보면서 어쩐지 내 그 오덕오덕하고 가난한 청춘도 괜히 보상받는 기분이었습니다.
아, 그립네요. 교토 가고 싶네요. 생각보다 꽤 하천스러운 가모 강도 보고 싶고.
물론 나방 군단은 사양이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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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1/15 02:42 2010/01/15 02:42
Posted by 유우

요무요무, 십이국기 페이지 개설

Under 감상의 늪/소설-소설가   Posted @2009/10/15 20:31

고단샤 십이국기 페이지 ▶ http://shop.kodansha.jp/bc/books/junikokki/
요무요무(신쵸샤) 십이국기 페이지 ▶ http://www.shinchosha.co.jp/yomyom/12kokuki/index.html


이런 미묘할 때가.
지난번처럼 매진되고 난리가 나고 하지는 않은 모양이지만
이번 요무요무도 호평. 아마존 요무요무 12호 서평이 죄다 <낙조의 옥> 서평.(예상한 일이지만)

팬들이 실망하지 않았을까 하는 걱정은 모두 기우였군요. 그냥 주상이 써서 다들 좋다고 하는 것 같기도.
저도 좋았지만요.(웃음)

요무요무에 새로 개설된 페이지의 '금박 두른 십이국 지도' 인상적이네요. 나름 좀 더 세세하고요(웃음)

그나저나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르겠네요.
주상은 대체 뭘하고 계신지도 잘 모르겠고요. 요즘 몇 가지 행보에 대해 저는 이해가 가지를 않아요.
원래 그랬던 사람이지만, 자신의 작품에 너무 차가운 사람이에요. 그런 모습까지 다 좋아하기 시작했지만, 한편으로 그게 팬으로서 너무 슬퍼요.


고단샤는 고단샤 나름 출판사의 대표작 중 하나인 <십이국기>를 소중히 여기고 있고,
신초샤는 신초샤 나름 열렬한 반응을 보인 <히쇼의 새>나 <낙조의 옥>을 놓아 줄 것 같지 않고.

독자로서는 신초든 고단샤든 상관 없으니 어쨌거나 하루 빨리 책으로 엮인 이야기가 읽고 싶을 따름이지만, 그래도 이건 아니라는 생각도 들어요.

주상, 십이국기 뒷편 이런 거 됐으니까 단행본으로 3권 정도 되는(당연히 2단) 신작 하나 내주면 안 되나요.
장편이 그립네요. 이제 본격에 대한 미련도 버렸으면 하고요ㅜㅠ(나쁘지는 않지만. 그래도 우물우물) 주상 문체로는 차라리 사회파가 더 낫지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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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0/15 20:31 2009/10/15 20:31
Posted by 유우

낙조의 옥(落照の獄) : 오노 후유미 (日)

Under 감상의 늪/소설-소설가   Posted @2009/10/04 21:31

<落照の獄> (yom yom 12)

풀어서 <석양이 비쳐드는 감옥>으로 할 필요는 없겠죠.
십이국기답게, 오노 후유미 답게 한자 그대로 <낙조의 옥>이라 해도 무난하겠습니다.

사실 저는 처음 이 제목을 보았을 때
'옥'을 '감옥'이 아니라 '지옥'이란 뜻으로 봤어요.
그래서 대체 어떤 지옥 그림이 펼쳐질지 궁금했죠.

일단 제목은 다른 뜻없이 말 그대로 감옥 안에 비쳐드는 붉은 노을입니다.
그 안에는 물론 기울어가는 나라를 뜻이 내포되어 있겠죠.
어쩌면 제가 처음에 했던 바보 같은 착각처럼 '지옥'의 풍경일 수도 있겠습니다.

조용하고, 정당하게, 하지만 확실히 그 나라가 망가져 가고 있는 모습이니까요.


사람들의 기대와는 달리(아니, 다들 어느 정도 예상했을 것 같지만)
류키는 등장하지 않습니다. 류왕에 대해서는 몇 줄 언급되었을 뿐이고요.
오히려 류왕의 아들놈(..)이 나와서 찌질 열전을 몇 페이지 보여주는데, 이 녀석이 참 찌질한데 의외로 공감이 가기도 했습니다. 아, 찌질해.

줄거리는 아주 간단합니다.
무차별 묻지 마 살인의 범인이 잡힙니다. 피해자 중에는 어린 아이도 있고 노인도 있습니다.
16건의 강도와 23명의 피해자. 죄질도 악질이거니와 피해자는 반성의 기색도 없고, 그 살해 방법 또한 '고문'에 가깝습니다.

자, 그럼 이 범인에게 어떤 판결을 내려야 할까요?
주인공은 판결을 내리는 직책을 가진 에이코라는 관리입니다.
백성들과 그의 부인까지 범인에게 사형을 내리라고 합니다. 여기서 재미있는 건 사형을 십이국에서는 '殺刑'이라고 쓴다는 점이네요.

류국에는 몇 가지 감형할 수 있는 조건이 있는데 범인은 어디에도 해당되지 않지요. 되려 종신형을 사느니 차라리 죽이라고 뻔뻔하게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류국에서는 현 류왕의 즉위 이후 사형을 내린 적이 없습니다. 법치 국가로 명성 높은 류국이지만, 실상을 보니 죄에 대해 매우 관대하더군요. 관대하달까, 죄값을 치르게 하기보다 갱생을 시키는 쪽에 힘을 기울이고 있는 듯합니다.

심정적으로 범인에게 사형도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지만, 사형 제도의 부활이 일으킬 파장에 고뇌하는 에이코.
어쩌면 사형 제도의 부활이 일으키는 폐해보다는 자신의 입으로 사형을 내리는 일이 곧, 자신이 사람을 죽이는 일이기 때문에 피하고 싶어하는 에이코.

저는 사회 논리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지만, 사형이란 살인의 일종이란 점에는 공감하므로
사형을 내리기를 꺼리는 관리들의 조금은 치사한 모습도 이해가 갔습니다.


뭐, 어쨌거나 말입니다. 이 이야기는 묘하게 십이국기가 아니라 그냥 현대 일본의 이야기 같더란 말입니다.
이 이야기의 가장 큰 실수는, 더 이상 이런 범죄가 우리에게 충격적이지 않다는 점이지요.
묻지 마 살인, 사이코패스, 요즘 세상에는 너무나 흔해진 범죄 중 하나가 되어 버렸다는 겁니다.
물론 십이국 세계에서는 엄청나게 쇼킹한 사건이겠지만.

좀더 질척한 절망감을 느끼기 원한 독자들에게는 좀 실망일 수 있겠습니다.
애증을 원한 독자들도.(웃음) 원래 건조한 작가지만 더더욱 건조해진 느낌입니다.
메마른 사회파 소설이 쓰고 싶은 건가? 그렇다면 십이국기가 아니라 현대물로 쓰는 게 나을 텐데.
사회 소설 같은 십이국기도 나름 매력적이겠지만, 현재 십이국 팬들은 사회 소설을 원하는 건 아니니까요.
어쨌든 뜬금없이 사형 제도의 정당성이라니, 내가 지금 오노 후유미 글을 읽는지 다카무라 가오루 글을 읽는지 정신이 딴나라로 갈 뻔했습니다(웃음).


저는 나름대로 마음에 들었지만, 위에도 말했듯 범인의 마지막 행동이 충격적이지 않아서 아쉬웠습니다.
요즘 너무 병든 이야기가 많아서요.


"─아버지는 살인자가 되나요?"
<낙조의 옥>, 오노 후유미,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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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0/04 21:31 2009/10/04 21:31
Posted by 유우

용신의 비 : 미치오 슈스케 (日)

Under 감상의 늪/소설-소설가   Posted @2009/08/21 16:23

  龍神の雨 : 道尾 秀介
   8점






제1장
(1) 비 때문에 그들은 죄를 저지른다
(2) 비 때문에 그는 가족을 살해한다
(3) 비에 의해 그들의 강줄기는 거칠어진다
(4) 비에 의해 그녀의 살의는 태어났다
(5) 빗속에서 그들은 집을 나선다
(6) 빗속에서 시체는 이동한다
(7) 비는 용에게 죄의 증거를 보낸다
(8) 비는 그들을 실패로 이끈다

제2장
(1) 용의 오른손은 붉게 물든다
(2) 그는 용의 악의와 대치한다
(3) 그녀를 원망해 용은 태어났다
(4) 그녀를 갈구해 용은 움직인다
(5) 누가 그녀를 용이 되게 하였는가?

제3장
(1) 용의 거처를 그는 알지 못한다
(2) 용의 목적을 그는 알지 못한다
(3) 그는 용의 정체에 다가서고
(4) 그녀는 함정에 빠진다

제4장
(1) 무덤은 진실을 말하고
(2) 용은 붙잡힌다
(3) 그는 남자의 얼굴을 알며
(4) 용은 악귀의 얼굴을 본다
(5) 용을 붙잡은 것은
(6) 두 개의 머리를 가진 악귀로
(7) 하나의 목은 책략을 꾸민다
(8) 그는 악귀가 사는 성의 소재를 찾는다
(9) 악귀는 그녀와 계약을 맺는다
(10) 용은 악귀의 성에서 무언의 소리를 지른다
(11) 모든 흐름은 성 정상에서 하나가 된다

종장
(1) 강(江)의 끝
(2) 용신의 비


‘원한을 품은 채 물에 빠져 죽으면 용이 된다’--계모의 계략으로 바다 한가운데 빠져 죽은 후지히메의 전설을 모티브로 한 소설로, 태풍이 상륙해 연이어 비가 내리는 며칠간을 그리고 있다.

어머니가 죽고 피가 섞이지 않은 새아버지와 함께 살게 된 렌과 가에데.
아버지가 죽고 피가 섞이지 않은 새어머니와 함께 살게 된 다쓰야와 게이스케.

렌은 새아버지가 가에데에게 손을 댄다는 사실을 알고 살의를 품는다. 비가 오는 날, 여느 때처럼 방에 틀어박혀 나오지 않는 아버지를 살해할 계획을 세운 렌, 그러나 그날 집에 돌아오니 아버지는 여동생 가에데의 손에 죽어 있었다. 두 사람은 아버지의 시체를 산 속에 묻고 사건을 은폐하려 한다.

한편 상냥한 새어머니와 새어머니에게 반항하는 형 다쓰야 사이에서 어린 게이스케는 갈등한다. 어느날 형의 손에 억지로 이끌려 도둑질을 하다 상점의 점원 렌에게 들키지만 렌은 그들의 처지를 동정해 풀어준다. 사과하기 위해 렌의 아파트를 찾아간 두 형제는 렌과 가에데가 무거운 짊을 끌고 어딘가로 가는 모습을 목격한다. 그리고 길에 떨어진 피묻은 가에데의 교복 스카프를 줍는 다쓰야.

그 이후 가에데는 협박 편지를 받는다. 가에데는 항상 자신을 바라보며 쫓아다니는 하급생 다쓰야를 의심하게 된다.

과연 진짜 ‘용’은 누구인가. ‘용’이 원망하는 이는 누구인가.



소제목이 굉장히 인상적인 작품이라 차례를 그대로 옮겨봤습니다. 내용 소개도 전에 써 놓은 걸 그대로 가져왔어요.
네, 실은 검토서였답니다. 미치오 슈스케는 일본에서 열렬히 뜨고 있는 작가이고, 이 작품에 대해 한국 출판사에서도 많이들 관심을 가지고 있는 모양입니다.
저도 그런 저런 시류를 타고 검토하는 겸 읽었던 게 벌써 한 달 전.
결과부터 말하자면 제가 근무하는 곳에서는 오퍼를 넣지 않았지만, 아마도 그리 멀지 않은 시간에 어디에선가 나오지 않을까 싶어요. 다만 전작 <섀도우>가 한국에서 그다지 반응이 좋지 않아서.. 참, 한국은 책 팔기 힘듭니다=.=

<용신의 비>라니 제목부터 범상치가 않은 이 작품.
원한을 품은 채 물에 빠져 죽으면 용이 된다는 설화가 베이스인 모양이에요. 그밖에 스사노오의 이야기도 나옵니다. 여하튼 용으로 시작해서 용으로 끝나는..(웃음) 이런 옛날 이야기를 좋아하는 저는 대환영이에요.

그렇지만 소설 자체는 매우 현대적이고, 폭풍우가 치는 며칠간의 사건을 다룬 기록입니다.
피가 섞이지 않은 아버지와 사는 남매와 피가 섞이지 않은 어머니와 사는 형제의 사연이 얽히며, 존속살해와 시체은닉, 범인을 협박하는 또 다른 존재, 흥미를 끌 요소는 충분하죠.

글 자체도 아주 잘 읽혀요. 특히 도입 부분이 속도감 있게 읽힙니다. 전체적인 작품성도 중요하겠지만 독자들로 하여금 책을 '손에 들게' 만드는 일은 아주 어려운데, 그런 걸 참 잘하는 작가다 싶었습니다.
초반의 임팩트에 비해 사건의 진실이 밝혀지는 부분이나 마무리는 좀 약하지만, 그런 부분을 커버할 수 있는 엔터테이먼트적인 능력(?)이 있다고 할까요. 요컨대 재밌게 읽고 덮을 수 있다는 말.(이게 동시에 단점이기도 합니다)

캐릭터들도 마음에 들고요. 싹싹한 렌이 좋았고, 질풍노도의 다쓰야도 귀여웠으며, 나름 형 생각하는 게이스케의 뻘짓들도 그럭저럭 괜찮았어요. 카에데만은 조금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같은 여자로서 그다지 '가엾다'는 느낌이 들지 않습니다.

살인이니 뭐니 무시무시하지만 결국 '진짜 가족이란 무엇인가'를 묻는 소설인데.그러니까 피가 섞였냐 안 섞였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는, 어쩌고저쩌고한 부분은 공감할 수 있지만, 갑자기 홈드라마가 되는 것에는 약간 울렁증이 났습니다. 사실 다 착한 사람들..? 이건 좀 아닌데;;
그래도 다쓰야가 새엄마와 은근슬쩍 화해하는 건 역시 귀여워서 좋았습니다. 지금은 많이 찌질하지만 앞으로 좋은 남자가 될 가능성 농후!(그냥 그렇게 찌질하게 살 수도 있고요=.=)


물론 렌이 더 좋지만...(웃음)
초반에 나온 렌의 "너도 죽이겠어!"라는 임팩트 있는 대사에 콩닥거렸습니다, 히힛. ..아, 이거 어쩐지 <건담W>스러....(전 그런 여자 아닙니다)

>감상이 뭐, 초등학생이 쓴 것 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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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8/21 16:23 2009/08/21 16:23
Posted by 유우

소년 H : 세노 갓파

Under 감상의 늪/소설-소설가   Posted @2009/08/13 11:01

요즘에 한번 절판되었던 책이 다시 나오는 일이 많이 눈에 띄는데
얼마 전에 세노 갓파의 <소년 H>가 다시 나온 걸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다시 나올 줄은 정말 생각지도 못했거든요.




표지가 갑자기 너무 '요즘 소설' 같아져서 조금 웃었습니다. 어울리는 것도 같아요.
6,7년 정도 전에 도서관에서 우연히 읽고 너무나 마음에 들어서 구매했던 기억이 납니다.
<펜끝으로 훔쳐본 세상>과 함께요.(이 책은 친구에게 선물까지 했을 정도로 마음에 들었죠^^)

엉뚱하지만 평범한 소년 세노 하지메─세노 갓파의 자전적 소설이에요.
지금 읽으면 어떤 느낌일지. 혹시 진부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분명히 당시 저에게는 새로운 세상이었습니다.
전쟁을 일으키고 다른 나라를 괴롭힌 일본을 미워할 줄밖에 몰랐던 저에게는요.

일본 전체가 나쁜 게 아니라, 일본 내에도 고통받은 사람들이 있다는 것.
모두가 전쟁을 지지한 것이 아니라는 것. 대다수의 시민이 그렇게 쓸쓸하고 가난한 시기를 보낸 것.


그렇다고 일본이 무슨 일만 있으면 '우리도 피해자야'라며 짜증내는 모습을 이해하고 싶은 마음은 없습니다.
일본내에도 피해자가 있었기에 더더욱, 국민을 그렇게 내몬 당시 일본 천황을 포함한 수뇌부를 눈감아 주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일본을 '피해자'로 만든 게 누구인지 정확히 판단해야 합니다.

아, 샛길로 빠졌군요. 여하튼 패전을 알리는 천황의 방송이 온나라에 퍼지고,
몰래 훔친 총을 뒷산에 묻은 아이들을 보면서 울컥 눈물이 났던 기억이 떠오릅니다.

어쩐지 오늘은 이런 마음이 따뜻해지는 책이 읽고 싶네요.
예전판으로 가지고 있는 책이지만 새로 나왔으니 장바구니에 담아 봅니다.(이렇게 지름은 끝나지 않고)


>세노 갓파 씨는 다치바나 다카시 씨와 친구로, 다치바나 씨가 사는 유명한 '고양이 건물'을 설계디자인한 걸로도 유명합니다. 원래는 무대미술가예요. 소설은 이 책이 처음이자 마지막이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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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8/13 11:01 2009/08/13 11:01
Posted by 유우

사슴 남자 : 마키메 마나부

Under 감상의 늪/소설-소설가   Posted @2009/08/04 12:24

사슴남자 - 7점
마키메 마나부 지음, 권일영 옮김/작가정신

이럴 수가, 어쩌지. 엄청나게 재미있을 줄 알았는데 '엄청나게'는 재밌지 않았습니다.
적당히 웃겼지만요.

그 전에 만화를 보고 대만족했고, 평판도 좋아서 더 기대를 한 게 화근일까요.
만화로 한번 봐서 재미없었던 거 아냐? 라고 하실 분도 계실지 모르겠지만(아, 재미없지는 않았어요)
만화는 1권만 봤기 때문에 이야기의 도입까지밖에 못 본 셈이에요.
오히려 만화로 본 부분은 재미있었는데 그 뒤로 갈 수록 뭔가..뭔가.. 뒤가 읽히면서 어쩐지 이야기가 텁텁해지더니. 요는 페이지가 많았던 게 아닐까요. 내용이 가진 무게에 비해서요.

그렇다고 소설 전개가 느린 것도 아니었는데,
이쯤 후다닥 끝날만하다고 생각했는데 아직 2/5이 남아 있을 때의 그 아찔함.
결국 단번에 읽지 못하고 묵혀 두고 읽어야 했습니다. 그래도 마음 잡고 읽으니 이삼백 페이지는 순식간에 읽히는 소설입니다.

소재도 기발하고, 전체적으로 발랄한 분위기도 좋습니다.
드라마는 아직 못봤는데 드라마로도 재미있을 것 같군요.
글보다는 오히려 드라마나 만화처럼 앞에 그림이 있는 게 더 어울릴 법한 이야기였습니다.

그래서 '엄청나게' 재밌지는 않았던 건가.


>읽으면서 공감 100% 문구.
"동료? 누가 그런 소릴 해? 쥐와 동료라는 이야기는 한 번도 한 적 없어. 누가 그런 지저분하고 교활한 거짓말쟁이 할망구와 동료래? 절대로 그러고 싶지 않아."

<사슴 남자>, 마카메 마나부 지음, 권일영 옮김, 작가정신 -p.220
그래, 쥐는 다 그런 존재였어. 훗. 나도 쥐랑은 친하게 지내지 말아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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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8/04 12:24 2009/08/04 12:24
Posted by 유우

기담─열두 가지의 거짓, 열두 가지의 진실─ : 아사노 아츠코

Under 감상의 늪/소설-소설가   Posted @2009/08/04 12:08

기담 - 6점
아사노 아츠코 지음, 권남희 옮김/아고라


'잔혹 동화'라는 포맷을 좋아하는 분이라면 관심을 가져봄직한 소설입니다.
(저는 '잔혹 동화'라는 포맷을 좋아하지는 않지만 '기담'이란 말을 좋아해서 덥썩 집고 말았습니다.)

적당힌 잔인하며, 적당히 으스스하고, 적당히 일본스러운 연작 소설로 부제처럼 24가지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여요. 이야기는 어는 왕국의 여왕의 이야기와 현대의 한 노파에 대한 이야기가 교차로 진행되지요.

왕비의 이야기는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일본식(유럽풍이지만 어쩐지 일본식인) 잔혹 동화.
노파의 이야기는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일본 전통 서술(?) 괴담.

이야기마다 텀도 짧고 책도 가벼우니 어딘가 갈 때 잠깐 읽고 덮기 좋은 책입니다.

단지 아쉬운 것은 아사노 아츠코가 쓸 필요는 없는 이야기라는 사실이지요. 아사노 아츠코는 아사노 아츠코다운 글을 쓰면 좋을 텐데 굳이 이걸 썼을까? 거기에는 분명히 의미가 있을 텐데, 저는 찾지 못했습니다. 어쩌면 제 안의 말도 안 되는 고정관념 때문일 수도 있고요.(아사노 아츠코는 상큼발랄하게 있어 달라는…)


디자인상의 불만이 하나 있는데, 가름끈 길이가 너무 길어서 부담스럽습니다. 애초에 책 전체의 분량도 적고 그 안에 실린 내용이 '콩트' 정도의 짧은 글 모음인데 가름끈이 필요한 걸까 싶기도 하고요. 저는 가름끈이 있으면 사용하고 마는 인간인데, 이 책에선 되려 가름끈이 방해가 되네요.
그 외 전체적인 편집은 깔끔합니다. 살로메풍(?)의 표지도 인상적이고요.

요는 읽고 덮기 편한 책. 하지만 다시 펼치게 만들만한 까슬함은 남기지 못한 책. 무난하지만 흔한 책. 작가가 아사노 아츠코라서 아쉬움이 남는 책. 아쉬움으로 별점은 미묘하게 매겨 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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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8/04 12:08 2009/08/04 12:08
Posted by 유우

태양을 끄는 말 / 표지

Under 감상의 늪/소설-소설가   Posted @2009/07/09 17:03

드디어 표지가 떴네요. 오오/

태양을 끄는 말 (상)

태양을 끄는 말 (하)


표지마저 난해한 이 책.(한숨)


<신리어왕>이 2005년에 나왔으니 4년만에 나오는 단행본이네요.
그리고 정말 고다에 굶주려 있던 분들을 위한 신작. 하지만 가노에 대해 굶주려 있다면 갈증만 더 심각하게 만들어 줄 책입니다.(다시 한숨)

고다 유이치로가 밀레니엄의 틈바구니에서 맞닥뜨린 두 가지 사건. 피로 물든 참극과 승려의 죽음(轢死) 저변에는 동기와 사체를 잇는 접점이 존재하지 않는 철저한 불확실성이 가로놓여 있었다. 『하루코 정가』,『신 리어왕』에 이어지는 후쿠자와 일족이 초래한 현대라는 이름의 수수께끼에 고다는 전율한다…….

책 소개입니다. 아, 책 소개만 봐도 가슴이 울렁거려서 잠이 오네요(조건반사)

당연히 다이렉트로 바로 사려고 했는데, 지른 게 너무 많기도 하고 어차피 마감 때라 바로 읽을 수도 없으니
얌전히 교보님에게 주문을 넣을까 합니다ㅜㅠ 흑흑. 가난이 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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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7/09 17:03 2009/07/09 17:03
Posted by 유우

애도하는 사람 : 덴도 아라타 (日)

Under 감상의 늪/소설-소설가   Posted @2009/06/15 17:51

작성일 ; 2008/12/29 10:45 로 되어 있습니다.
나오자마자 사서 읽고 기획서 겸 감상을 쓰다가 관둔 흔적.
감상을 완성하는 것도 지금은 부질없고, 파일로 대사 정리한 게 있는데 그것도 부질없는 듯.
날카롭게 위선적이고 아름다운 소설이었다는 느낌만이 지금 제 안에 떠오릅니다.

결국은 저희가 내지는 못하게 되었고요. 다른 곳에서 계약했으니 언젠가 한국어판이 나오겠지요.
말해 두지만 '재미있는' 소설은 아닙니다. 엄청나게 공감할 수 있는 소설도 아니고요.
마음이 따뜻해지는 소설도 아니에요. 자기 만족을 위한 소설이죠.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걸로 충분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걸로 충분히 등장하는 인물 모두의 삶이 아름다웠습니다. (2009-6-15)


*


7년을 걸쳐 쓴 것은 이 세상에서 지금 가장 있어 주었으면 하는 사람의 이야기입니다. -덴도 아라타

서명 : 悼む人 (애도하는 사람)
저자 : 天童荒太 (덴도 아라타)
출판사 : 文藝春秋 (문예춘추)

내용 : 잔인하고 야한 기사를 전문으로 쓰는 3류 기자 마키노 고타로, 암 말기 환자로 치료를 포기하고 자택 요양을 택한 사카쓰키 준코, 살아 있는 부처라 불리던 남편을 죽이고 4년을 복역하고 나온 여자 나기 유키요. 세 명의 주인공이 각자 전국 각지를 돌며 죽은 사람을 애도하는 남자, 시즈토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그는 죽음 그 자체에 대해 추모하는 일이 결코 없다. 죽은 사람이 누구를 사랑했는지, 누구에게 사랑받았는지, 무슨 일로 사람들에게 감사받았는지에 대해 묻고 그의 삶을 애도할 뿐이다. 시즈토는 자신을 '병'이라고 말한다.
그는 위선자인가, 혹은 그저 마음이 병든 사람인가, 어째서 그 일을 멈추지 않는가, 그 행동의 목적은 무엇인가.

목차 :
프롤로그
제1장 목격자(目撃者) (마키노 고타로-Ⅰ)
제2장 보호자(保護者) (사카쓰키 준코 - Ⅰ)
제3장 반려자(髄伴者) (나기 유키요 - Ⅰ)
제4장 위선자(偽善者) (마키노 고타로 - Ⅱ)
제5장 대변자(代弁者) (사카쓰키 준코 - Ⅱ)
제6장 방관자(傍観者) (나기 유키요 - Ⅱ)
제7장 탐색자(捜索者) (마키노 고타로 - Ⅲ)
제8장 간병인(介護者) (사카쓰키 준코 - Ⅲ)
제9장 이해자(理解者) (나기 유키요 - Ⅲ)
에필로그

--
덴도 아라타의 소설을 위선적인 트라우마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위선적인 치유계 소설. 그렇게 따진다면 이 소설은 위선의 극치입니다. '애도하는 사람'으로 불리는 시즈토의 행동은 자기 만족이고, 기만이에요. 그는 마음에 무거운 병을 지니고 자신을 내몹니다. 그렇지만 이상하게도 그의 모습엔 설득력이 있죠. 덴도 아라타의 위선에는 설득력이 있습니다. 그것이 한순간의 위안이란 걸 알아도 울컥하는 무언가가 확실히 이 소설에는 있었습니다.

사건을 추적하는 게 아니라, 담담히 인물들의 삶에 대해서, 그들이 시즈토를 바라보는 시선의 변화에 대해 설명하고 있습니다. 인간에 대한 탐구와 구원. 이미 이건 장르 문학이라고 하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일본에선 벌써 서평들이 꽤 올라 왔는데, 역시나 호오가 갈리는 군요. '재미'를 추구하는 목적의 소설이 아니지만, 그렇다고 '이해'를 요하는 소설도 아닙니다. 시즈토란 인물은 어느 순간엔 이해가 가기도 하고, 어느 순간엔 전혀 수용할 수 없는 인간이기도 합니다. 그를 전부 이해할 필요도 없고, 신봉할 필요도 없습니다.


뜬금없는 이야기지만, 얼마 전에 <용서>라는 다큐멘터리를 보았습니다. 살해 피해자 가족들의 이야기를 담은 다큐멘터리에서, 한 아저씨는 유영철에게 어머니와 아내와 아들을 잃은 60대 아저씨가 유영철의 사형을 반대하는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남은 가족들도 주변 사람들도 그를 이해하지 못했고, 유영철에게 피해를 입은 다른 가족들은 그에게 분개했습니다. TV를 보던 우리 가족도 모두 저 사람 이상하다고 화를 냈어요.
분명히 제 눈에도 그가 극심한 슬픔 끝에 종교적으로 너무 치우쳐 버린 것 같더군요. 하지만 저는 그를 비난할 수 없었습니다. 그 안에서 '시즈토'의 모습을 보았거든요. 그와 비슷한 처지에서 그를 위로하는 사람중 한 명이 말했습니다.
죽은 모습만이 떠올라서 너무나 괴로웠다고, 어느 순간 살해당한 가족이 살아 있던 순간이 아닌 죽은 모습만으로 기억되게 되었다고.
어떻게 처참하게 살해당했는지는 기억하지만, 그들이 얼마나 행복하게 살았는지를 기억하는 것은 무척 어려운 일입니다. 시즈토의 행동도 이런 이야기들로 조금은 설명되지 않을까요.

사실 사람이 죽는 모습은, 그것은 평온하게 살다 가는 것이든 병으로 고통스러워 하며 가는 것이든 사고든 사건이든 자살이든 지독히 인상적입니다. 그 모습을 보고 나면 떨쳐내기 어려운 것이지요.
사람의 죽음이 아닌, 삶을 기억하는 일은 얼마나 어려운 일입니까. 죽은 사람이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사라져 가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지만, 그것은 유족들에겐 또다른 고통이 될 수도 있습니다. 신문 한귀퉁이에 실린, 사람들이 '시시한 삶'이라고 말하는 흔해빠진 죽음이 누군가에겐 대체 할 수 없는 특별한 사람이었다는 것. 텔레비전도 신문도 다루지 않지만 그들은 분명히 누군가를 사랑했고, 사랑받았으며 누군가에게 감사받았던 '이 세상을 살았던 인간'이었습니다. 시즈토는 그런 사실들에, 죽어 간 소중한 이들을 잊어 가는 것에 죄책감을 느끼며 괴로움에 무너지고 쓰러져서 마침내 여행을 떠납니다.

그의 여행에는 아무런 신앙도 진리도, 끝내 무엇이 되리란 확신도 없지만 그는 오늘 이 사람을 애도하고, 내일 저 사람을 애도하지 않는 일은 도저히 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다른 사람이 보기에 이해할 수 없는 여행을 그는 줄곧 하고 있습니다. 자신은 병이라고 말하면서요.



*

이 뒤에 제가 무슨 말을 하려 했는지 대충 짐작은 가지만 앞서 말했듯이 굳이 덧붙이지 않겠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유키요가 좋았습니다. 유키요의 과거도 현재도 미래도 좋았습니다. 시즈토와 유키요가 다시 만날 일이 없더라도, 분명히 두 사람은 언젠가 함께 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할지도 모릅니다. 유키요와 함께 했던 모든 사람이, 아마도 그러리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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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6/15 17:51 2009/06/15 17:51
Posted by 유우

수은충 : 슈카와 미나토

Under 감상의 늪/소설-소설가   Posted @2009/06/04 09:27

수은충 - 3점
슈카와 미나토 지음, 이규원 옮김/노블마인

"그렇게 좋은 사람이 왜 사람을 죽였어요."    -<고엽의 날>

저 대사가 나오는 순간 온몸이 찌릿했습니다. 이런 담담하고 파괴적인 한마디를 위해서 책을 읽는 저로서는 지극히 행복한 순간이었습니다. 하지만 누가 그랬던가요. 행복 뒤엔 불행이 기다리고 있다고.

좋았던 것은 딱 저 대사까지였습니다. 뒤부터는 페이지를 넘기면 넘길수록 고통스럽고 아름답지 않은 이야기들이 펼쳐지고 있습니다. '아름답지 않다'는 말은 '추악하다'와는 다릅니다.
차라리 '추악'했다면. 그로테스크의 끝을 내달리다 질펀하게 망가져 버렸다면, 나는 끝까지 행복했을 겁니다.
적어도 이 책을 읽는데에 시간을 소비하는 것이 불행하다고 여기지는 않았을 겁니다.


존속살해, 근친상간, 인육… 이제는 흔해 빠진 금단의 소재들이지만, 그래도 여전히 매력적이지 않습니까.
그것을 눈에 보이지 않는 '수은충'이라는 가공의 벌레로 표현한 작품이라니, 눈이 팽글팽글 돌만큼 멋져서 주저하지 않고 카트에 넣었습니다만…

금단의 소재를 다루는 방법까지 진부할 필요는 없지 않습니까.
클리셰도 클리셰 나름의 매력이 있다고 주장하는 저도 이 책을 킹 오브 클리셰라고 명명하고 내던지고 싶은 충동을 몇 번 삼켰습니다.
그래서 작가는 권선징악이라도 외치고 싶었던 걸까요.

이를테면 '그러게 왜 근친상간 따위 했어!'라고 말입니다. ...하?

이건 마치 소설의 한 챕터인 <잔설의 날>에 나오는 사나코 같지 않습니까? 그저 혼자 도취했을 뿐입니다. 금단의 소재를 늘어놓는 걸 즐길 뿐입니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에요. 아무런 아름다움도 추악함도 느낄 수 없는, 그저 진열된 상품이었습니다.


각 단편마다 주인공이 저지른 죄를 마지막에 폭로하면서 임팩트를 주는 단편인 것 같은데, 중간에 대충 다 짐작이 가서 임팩트도 없었거니와 아무런 여운도 없군요. 여운을 줄 틈도 안 주고 작가가 주절주절 다 폭로하며 '이래선 안 됐는데' 따위의 회개의 말로 매듭을 지어 버리니, 그들을 동정할 마음도 동조할 마음도 없는 저는 웃음만 났습니다.

금단의 소재를 다루면서 대체 왜 이렇게 모럴을 챙기는 걸까. 그야말로 모럴의 군더더기 같은 느낌으로요.
현대판 '죄와 벌'이라서? 그보다는 오히려 '사랑과 전쟁'이 더 어울릴까 싶습니다만.


이 책의 진짜 반전은 마지막의 역자 후기만큼은 일품이란 사실입니다. 수은 온도계의 추억을 이야기하는 부분이 책 속의 수은충에 대한 표현보다 훨씬 아름다웠습니다.(한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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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6/04 09:27 2009/06/04 09:27
Posted by 유우

도피행 : 시노다 세쓰코

Under 감상의 늪/소설-소설가   Posted @2009/05/18 13:08

도피행 - 10점
시노다 세츠코 지음, 김성은 옮김/국일미디어(국일출판사)


나는 좀 더 통쾌하기를 바랐습니다.
자신의 삶만을 바라보는 남편이 시원하게 걷어 차이기를,
자신만을 바라보는 딸들이 무릎을 꿇고 사죄하기를.

하지만 그러지 않았습니다. 시노다 세쓰코는 그러지 않았습니다.
그저 조용히 숨이 멎었고, 자연이 되었죠. 그것은 오히려 강렬한 적의처럼 느껴졌습니다.


실은 읽는 내내 덴도 아라타의 <애도하는 사람>을 떠올렸어요. 이번에 나오키 상을 받은 그 작품이요.
덴도 아라타의 소설은 위선적이고, 시노다 세쓰코의 소설은 적대적이었습니다.

덴도 아라타의 위선이 나를 치유한 것이 사실이지만
나는 시노다 세쓰코의 적의가 더 마음에 와 닿았습니다.


얼마 안 되는 분량, 중간이 빠진 듯하기도 하고 우연이 너무 겹친다 싶기도 한 빠른 전개가 몇 프로인가 부족하고 아쉽지만 비린내 나는 흙 속에서 보석을 발견한 것 같아 기쁜 한 권이었습니다. 포포가 평온한 마지막을 맞이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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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5/18 13:08 2009/05/18 13:08
Posted by 유우

지나가는 소리 (GH)

Under 감상의 늪/소설-소설가   Posted @2009/05/07 10:13

<마성..>을 내면서 듣는 소리도 있고, 게으른 저도 여기저기 웹서핑도 하면서 예전 글들을 찾아 보았습니다. 그런데 의외로 <고스트 헌트> 라이센스가 왜 안나오냐는 말이 많군요. 하긴, 만화책도 있고 애니까지 나왔으니 원작 소설을 찾는 사람이 많아지는 건 당연한 일일지도.

90년대 나온 주상 작품은 대부분 한국에 나와 있지만 그 이전이나 이후 책들은 거의 나오지 않았죠.
나오지 않은 것은 나오지 않을 만한 이유가 있다고, 저는 생각해요.
이후 책들은 뭐, 딱히 나오면 안돼!랄 건 없지만. 그래도 흥행이 불안한 작품들이라..-.- 저는 내라고 적극 권할 수 없어요;;

90년대 나왔지만 안 나온 <동경이문>은.. ... 왜 못 나오는지 내용을 잘 숙지하고 계신 분이라면 이해할 듯;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작품이기도 하니 아쉽기는 하지만, 리스크가 너무 큰 작품입니다.

그리고 문제의 <악령 시리즈(이후 고스트 헌트로 개제)>를 포함한 그 이전 작품들 말인데요.
이 책들은 흑역사입니다. 굳이 흑역사를 파헤칠 필요는 없습니다. 팬으로서 읽고 싶은 마음은 충분히 이해하지만, 제가 강력히 말하는데 만화책이 더 재밌습니다, 여러분T_T 만화책으로 보세요. 주상이 다시 리뉴얼판을 낸다면 모를까 그 이전판으로 나올 일은 단연코 없지 않을까 싶습니다. 일단 독자층도 <십이국기>나 <시귀>와는 전혀 다르기 때문에. 어디까지나 틴에이저'만'을 위한 소설이기 때문에.

이렇게 말하는 전 <고스트 헌트>의 열렬한 팬입니다…… 소설도 나름 재밌게 읽기야 했어요…………
하지만 어쩐지 원작 소설보다 동인지(주상이 직접 내신 것도 포함해서)가 더 재밌었던 듯한;;;
그런 아련한 기억이 나네요. 그렇다고요T_T 아, 마감 끝나면 <고스트 헌트>나 다시 읽을까봐요. 이나다 시호 씨 돌아오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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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5/07 10:13 2009/05/07 10:13
Posted by 유우

내 남자 : 사쿠라바 가즈키

Under 감상의 늪/소설-소설가   Posted @2009/02/04 11:00

내 남자 - 10점
사쿠라바 가즈키 지음, 김난주 옮김/재인

좋다는 이야기는 많이 들었지만 그렇게 당기는 작가는 아니었습니다.
나오키 상에 대한 불신은 많이 수그러들긴 했지만 여전히 신뢰하고 있진 않고요.
그러다 퍼뜩 사게 된 이유는, 물론. 장르가. ……이기 때문입니다.

훗.

이름을 보고 당연히 남자라고 생각했는데, 문장이 아주 끈덕끈덕 여자 말씨더군요.
번역한 김난주 씨 말투도 배어나오긴 하지만, 이 끈적거림은 원문의 힘도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이하, 미리니름은 물론이고 사람에 따라 거북하고 구역질 나는 이야기가 길게 이어집니다. 적당히 걸러서 읽으세요)


아버지와 딸. 제가 좋아하지만 거북해 하는 소재이기도 한데요. 이유는 '아버지'가 주도권을 가지게 되는 경우 일방적인 육체적 욕망의 충족으로 빠지기 십상이라서. 기본적으로 숨이 턱턱 막히는 버석버석한 에로스는 좋아하지만, 에로스를 위한 에로스는 싫어하는지라, 여하튼 이 경계를 지키는 것이 아주 힘듭니다.

그런데 이 소설은 '여자'가 주체입니다. 딸이 아니라요. 이 점이 아주 마음에 들어요.
여자도 제가 좋아하는 '나쁜 여자'죠. 아, 그렇구나, 아버지와 딸의 관계에 대해 전 너무 고리타분하게 생각했나 봐요. 발상을 바꿔서 딸이 '나쁜 여자'이면 되는데 말이죠. 저에게 나쁜 여자=어머니 란 이상한 공식이 있다는 건 아는 사람은 아는 일이지만. 이 소설의 주인공은 딱 그런 역할입니다.

딸이고 어머니이고 나쁜 여자죠. 티 없이 순도 100% 여자입니다.
저에게 이건 완전히 메르헨 세계라고요. 이 사랑스러움을 대체 어떻게 하면 됩니까.


전체적으로 제가 10대 시절에 추구하던 근친 관계도입니다. 전 그 시절이 가장 끈적끈적했죠.(웃음)
그 후론 적당히 담백한 것이 좋았는데, 오랜 만에 이렇게 농도가 짙은 걸 보니 다시 10년 전으로 돌아간 듯한 기묘한 고양감에 도취중. 억제하는 삶 속에 이런 것도 가끔은 좋네요. 좋습니다. 아주 좋아요.

이젠 책 읽다 접거나 줄 긋는 건 자제하려고 반절 정도까지 참았는데 도저히 참지 못하고 이후에 마구 접어 댔습니다. 내 책인데 뭐 어때, 흥!




전 이런 지극히 개인적이고 사소한 이야기를 써 놓는 걸 좋아해요. 봐도 나밖에 이해할 수 없죠. 그게 꼭 아끼는 책에 묻은 손때처럼 '내 것'이라는 느낌이 나서 좋단 말입니다.


> 필 받았는데 '이런 근친을 추천한다' 카테고리라도 만들까봐요….(30% 진심/한 명이라도 호응해 주면 만듭니다-_-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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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2/04 11:00 2009/02/04 11:00
Posted by 유우

"부탁입니다. 죽지 말아 주세요."

Under 감상의 늪/소설-소설가   Posted @2008/12/30 00:48

"말하지 말아 주세요."
"귀 막지 마."
"부탁이니 말하지 말아 주세요."
"다카사토!"
"아무 것도 하지 말아 주세요!"
진지한 눈매가 히로세를 올려본다.
"부탁입니다. 죽지 말아 주세요."
<마성의 아이> 오노 후유미, 신쵸샤, p.342



혼자만의 벽에 부딪혀 무심코 페이지를 넘겼는데 손에서 뗄 수 없어서 줄곧 읽고 말았습니다.
나는 계속 히로세의 편이었지요.
히로세의 대사를 몇 번이나 다시 읽고 울었습니다. 히로세는 나이고, 그렇지만 나는 결코 히로세는 될 수 없었습니다.
히로세가 다카사토에게서 자신을 봤지만, 결코 다카사토는 될 수 없었던 것처럼.

그런데 오늘 이 말에 무너졌습니다. 다카사토의 조용한 절망. 너무나 깊어서 색조차 느끼지 못하는 무기력함이 나를 오그라들게 합니다. 견딜 수 없게 합니다.


친구들과 이야기할 때 농담 반 진담 반, 기린은 뿔이 잘리고 장군은 팔이 떨어져 나갔으니 교소는 다리 병신이라도 되야 하지 않나 하는 소릴 합니다만. 이제 아무래도 좋아. 정말 병신이 되어 있든 사지멀쩡한데 국민들 생고생시키면서 혼자 꿍꿍이속이 있었든지 상관 없으니 교소가 나타나 줬으면 좋겠습니다.
스스로에게 절망한 이 기린을 구해 줄 사람은 세상에 그밖에는 없으니까요. 기린의 주인밖에 없으니까요.

교소가 훌쩍 커 버린 타이키를 보고 깜짝 놀라는 바보 같은 모습도 좀 보고 싶고요.(웃음)


그리고 또 하나, 무네큥 대사.

'알고 있었어. 왜냐하면 나는 줄곧 그 아이를 죽이고 싶었으니까.'
<마성의 아이> 오노 후유미, 신쵸샤, p.327


나쁜 엄마 모에에 걸렸습니다. 그녀가 어린 다카사토를 보통 어머니처럼 사랑했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에, 이 정도까지 자신의 아들을 미워하는 곳까지 추락한 절망 또한 애정으로 보입니다.(콩깍지) 여하튼 나쁜 엄마는 모에합니다.(요즘은 나쁜 여자로 범위가 넓혀지고 있어요)


차라리 죽이지 그랬냐고 원망하고 싶은 마음도 있습니다. 죽일래야 죽일 수 없었겠지만.
만약 정말 죽일 수 있었다면, 죽을 수 있었다면, 다카사토가 빨리 죽는 것이 하나의 방편이 되었겠지만 이미 되돌리기는 너무 많은 희생을 치렀습니다.

의외로 대국이 (이 고비만 넘기면) 꽤 오래 버틸 것 같단 생각도 듭니다.
다카사토가 이제 웬만해선 꿈쩍도 안 할 것 같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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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2/30 00:48 2008/12/30 00:48
Posted by 유우

고양이는 마술사 (정보?)

Under 감상의 늪/소설-소설가   Posted @2008/11/17 15:51

인간의 눈에는 고양이마다 성격이나 표정이 있는 것처럼 보이며, 사람이 없으면 외로워하고 사람 곁에 다가와서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울 때도 있는데, 그걸 가지고 인간에게 길들었다든가 야생을 잃었다고 하기 이전에 오히려 그들은 생존 본능에 따라 새로운 환경에 적응했다고 말해야 할 것이다. 한편 인간은 개처럼 적극적으로 생활에 도움이 되지도 않는 고양이를 기르며 이유 없이 매일 바라보고 명명하기 어려운 감정생활 일부로서 받아들이고 있다. 생각해 보면 인간과 동물의 이러한 공존은 환상이나 의인화 이전에 그저 괴이하다.

「猫」と「ねこ」 ─  高村 薫 (ねこ新聞 2004年7月号)

모 블로그를 통해 이따금 다카무라 여사의 신문사설이나 에세이를 읽고 있습니다.
에세이마저도 난해한 문장을 이어가는 여사를 보면 마음이 놓입니다.
어딘가 뒤틀려서 소설의 문장이 이렇게 이해할 수 없는 말들의 나열인 게 아니라, 그냥 그게 여사의 모습이란 사실을 확인할 수 있으니까요.

얼마 전부터 틈틈이, 정말 아주 틈틈이 [하루코 정가]를 읽고 있습니다. 이제 50페이지쯤 읽었나?
쇼와시대 가나가 나온다기에 그 부분이 읽기 힘든가 했는데, 오히려 하루코의 편지들은 잘 읽힙니다. 현대의 아키유키의 말들이 나에겐 형태를 종잡을 수 없습니다.

머리속으로 내용을 따라잡지 못하고 있는데 어느새 내가 세찬 바람이 부는 언덕 위에 서 있는 기분입니다.

아. 정말 다카무라 가오루구나. 어쩔 수 없이 당신이구나.

이 에세이는 얼마 전에 책으로 나왔습니다. [猫は魔術師]라는 제목으로 죽서방에서 나왔네요. 실린 내용은 웹에 공개된 부분 외엔 추가가 없는 듯하여 바로는 사지 않고 일단 보관함에 담아 두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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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1/17 15:51 2008/11/17 15:51
Posted by 유우

벚꽃지는 계절에 그대를 그리워하네 : 우타노 쇼고

Under 감상의 늪/소설-소설가   Posted @2008/11/16 16:41

벚꽃지는 계절에 그대를 그리워하네 - 8점
우타노 쇼고 지음/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평도 익히 들었고, 실은 트릭도 이미 알고 있는 시점에서 읽었습니다.
제 경우엔 트릭을 미리 알아서 다행이었단 생각도 듭니다.
그냥 읽었다면 남자 주인공의 무절제한 성생활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길길이 날뛰었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두 사람의 연애 행각에도 알러지 반응을 일으켰을지도.

결과적으로 생각하지 않으려 해도 이미 '이 사람들 실은..'을 알고 있는 덕에 귀여워서 데굴데굴 구르면서 봤습니다. ..그... ... 그.. 뭐랄까.. ... 그...... ... 귀엽잖아요?!(강요) 읽다 보니 트릭을 몰랐어도 처음엔 좀 걸렸겠지만 중반부턴 귀엽게 읽었을 것 같기도. 요즘 연애물 알러지가 굉장히 좋아졌습니다.(칭찬해 주세요=ㅅ=) 이것도 나이가 들면 입맛이 바뀌기 때문인가요;;

마지막에 과거의 사건이 밝혀지는 부분은 좀 이해할 수 없었지만.(결국 범인 찾기엔 전혀 관심이 없어서)
대체로 좋았습니다. 두 사람의 산뜻한 결말도.

'벚꽃지는 계절'이란 표현도 참 어울리는 것 같아요. 표지도 책 이미지랑 잘 어울리고. 번역은 몇 군데 표시는 했지만, 대체로 김성기 씨 번역은 언제나 무난한듯.


연애 소설 같은 제목과 표지에 속았다는 사람들이 많지만.
제 생각을 말하자면, 연애 소설 맞습니다.

반전이 시시하다는 사람도 있고 정말 놀라웠던 사람도 있지만. 중요한 건 반전이 아니잖아요?
추리소설을 읽는 의의가 트릭과 반전을 찾아내는 것에 있다면 전 여전히 이쪽 장르의 책과는 어울리지 못할 겁니다. 트릭과 복선을 찾는 재주도 없고, 반대로 때로는 처음 얼마를 읽자마자 (무슨 신이 내린 건지) 뒷내용이 촤르륵 나올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제가 중요시하는 건 인물들의 관계의 정당성이고, 만들어진 캐릭터가 얼마나 실제 인간미가 넘치느냐이고, 내용 구조와 문장의 아름다움에 있습니다.

역시 미스터리 독자로선 실격인가요? 그래도 좋습니다. 나는 그냥 내 미적 기준을 찾아가는 걸로 족합니다.

사족이 길었네요. 어쨌든 그런 기준으로 봐서 이 작품은 위트 넘치고 산뜻했습니다.
무거운 주제를 담고 있지만, 주인공의 성격 때문인지 마지막까지 아주 힘찼습니다. 조금 잘못 들은 길을 걷고 있어도 분명히 두 사람은 행복해 보였고요. 그걸로 만족했습니다. 재밌게 보고서 별 4개는 사실 좀 짠가 싶기도 합니다만, 키비시이한 사람이 되기로 했습니다.(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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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1/16 16:41 2008/11/16 16:41
Posted by 유우

프레자일 한마디

Under 감상의 늪/소설-소설가   Posted @2008/11/13 08:51

라이센스가 나온다고요?!
오오. 요즘은 짤리거나 하는 일 없나요? 요즘이고 뭐고, 예전부터 소설은 안 봤으니 그쪽은 잘 모르는 세계.

어쨌든 사람들이 프레자일을 더 많이 볼 수 있다는 건 참으로 바람직합니다.
이로써 안티 코노하라가 더 늘 것임(쿨럭쿨럭)

개인적으론 알콩달콩 닭커플이라고 부릅니다. 정말 이렇게 잘 사는 커플도 드물다고요?! 물론 한쪽이 (인간성이) 개지만요. 약간 노이로제 기미는 있지만, 그래도 아오이케가 오오코우치 개ㅈㅅ이 귀여워서 미치려는 건 마구 느껴집니다.(저에게만은....) 오오코우치, 그 뭣 같은 놈도 정말 너무 제취향이구요T_T(..아오이케가 아니라 오오코우치가 취향.. ... 전 대체 어떻게 하면 좋습니까)

코노하라 여사의 최근 작품 중 단연 최고..(각혈)
개인적으로 추가된 내용도 좋았어요. 랄까, 추가된 내용이 좋았습니다. 삽화도 어울렸고요.
드물게도 잡지와 단행본 삽화 모두 좋아합니다>_<


어쨌든 한국어판 보시고 알콩달콩 닭커플에 대해 저랑 논의하실 분 모집합니다.
같이 오오코우치를 씹으면서 애정을 확인해 보아요///



>의학적으로 '하시모토 병'이 실재한다는 사실을 알고 여름에 잠깐 죽어 있었습니다. [시귀]에 나와요(쿨럭) 저는 하시모토 병(그냥 정말 하시모토란 인간을 좋아하는 병-.-) 말기입니다. 치료 불가능해요.


>줄기차게 창룡사에서만 책을 내서 그런지 오해하시는 분이 꽤 계십니다. 프레자일은 리브레에서 나왔어요. 이상한 라벨이었던 걸로 기억. 그러고 보니 그 살색 표지는 그대로 나오는 것인가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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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1/13 08:51 2008/11/13 08:51
Posted by 유우

오사카에 있는 가노에게 전화를 걸어…

Under 감상의 늪/소설-소설가   Posted @2008/10/27 15:38

그러나 심야가 되어 방치했던 후쿠자와 아키유키의 편지를 펼쳐 후쿠자와와 그 아들, 만난 적도 없는 그들에게 종속된 자들(係累)이며 간 적도 없는 토지의 풍경 등의 동공(穴)을 향해 또다시 무언가 혼잣말을 중얼거리다 오사카에 있는 가노(元義兄)에게 전화를 걸어 약간의 대화를 나누고 조금 울었다.

-『태양을 끄는 말』다카무라 가오루



방금 전에 팩스로 마지막 화를 받았습니다.(N님 감사합니다//)
휘리릭 내용을 확인하니 이런 떡밥 o<-<
고다야 네가 울면 형아 마음은 어떻겠니. 넌 정말 생각이 없구나.
난 이런 마음으로 오늘 더는 일을 못 하겠다.(이런 식으로 늘 농땡이)


>係累는 부양가족이란 간단한 말이 있는데 앞에 내용을 정확히 몰라 어떤 사람들을 뜻하는지 알 길이 없군요. 그래서 저런 이상한 풀어쓰기.

>元義兄를 저도 모르게 '처형'이라고 번역. .. ... 잘못을 깨달았지만 딱히 틀린 말도 아니란 생각이 번뜩. 유스케 넌 정말 남자냐ㅡㅜ

>저는 오늘 집에 가서 동인지 한 권 써야 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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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0/27 15:38 2008/10/27 15:38
Posted by 유우

외딴집 : 미야베 미유키

Under 감상의 늪/소설-소설가   Posted @2008/09/14 02:03

외딴집 - 상 - 9점
미야베 미유키 지음, 김소연 옮김/북스피어

미리 양해 말씀. 한동안, 이랄까 지금 리뷰 쓰려고 하는 책들 몇 권이 전부  북스피어에서 나온 책이 될 예정입니다. 출판사 홍보 이런 거 아니고요, 최근에 읽은 것들을 쓰려다 보니 그렇게 된 것뿐입니다. 어디까지나 독자입장에서.(아직 독자 쪽이 맞기도 하고요^^;)

어쨌거나 인터넷서점 상품정보는 매우 편리합니다. 내용설명 내가 하지 않아도 정보 페이지에 들어가서 보면 되고!(아하하) 정말 옛날부터 줄거리 요약은 쥐약입니다. 게다가 제가 요약해 놓은 걸 보면 원래 작품과는 거리가 있는 모조리 제 스타일로 부패한 느낌이 나서 미안하단 말입니다-.-

<외딴집>은 미야베 미유키의 시대극입니다. 기구한 사연으로 흘러흘러 시고쿠의 작은 번, 마루미에 정착한 어린소녀 '호'. 고위관직에 있었으나 잔인한 살인을 저지르고 마루미로 유배된 '가가' 님. 가가 님이 오시면서 마루미에는 불길한 일들이 일어납니다. 호는 가가 님이 유폐 된 저택의 하녀로 들어가게 된다. 대충 중요한 부분은 이렇게 될까요. 사실 이것만 보고 시작하면, 1권 내내 등장하지 않는 가가 님 때문에 속을 좀 앓아야 합니다.
중요한 건 호가 성장하는 과정과, 순수한 호와는 대조되는 사회의 어두운 면들. 그런 것들이겠습니다.

호가 정말 굉장히 귀여워서 호가 나오는 부분은 스륵스륵 읽힙니다. 다른 캐릭터들도 다 괜찮은데, 어쩐지 호가 나오는 부분만큼 술술은 안 읽힙니다. 그게 좀 아쉬움.
실은 시대적인 배경이 그렇게 깊이 관여하는 건 아니라, 에도시대에 대한 대강의 외관을 알고 있다면 크게 문제가 되진 않습니다만. 대부분 독자가 그다지 관심 없는 시대 얘기란 걸 생각하면 약간 씹어 넘기기 어렵지 않을까 싶습니다. 솔직히 저도 좀 까끌까끌했는데.
요즘은 따로 각주가 있는 것보단 본문 중간에 같이 섞여 있는 경우가 많은데, 이게 띄엄띄엄 있을 땐 솔직히 편하거든요. 근데 이 작품은 그게 한 권에 한두 군데 있는 게 아니잖아요. 너무 대량으로 나오니까 내용 흐름이 뚝뚝 끊겨 분위기가 산만해집니다.

산만한 분위기엔 번역 문제도 있습니다. 김소연 씨는 워낙 제가 좋아하는 작품을 많이 한 분이시기도 하고, 본인 말씀대로 시대물을 많이 작업하셨죠. 근데 제 생각에 김소연 씨 번역은 상당히 직역에 가까워서인지1, 약간 끊어지는 맛이 있는 시대물에 어울리는 것 같아요. 실제로 <괴이>는 김소연 씨 말투가 아주 잘 맞았거든요. <샤바케>나 <음양사> 같은 것도 그렇고. 내용이 짧게 끊어지면서, 유쾌한 분위기가 어울립니다.
하지만 무겁고 길게 늘어지는 <외딴집>에선 약간 어긋났습니다. 직역보다는 좀 더 돌리는 편이 어울리지 않았을까요.

초반부의 이런 까끌까끌함을 무사히 넘긴다면 전체적인 내용의 재미는 보장할 수 있습니다. 마지막 엔딩엔 반드시 울 수 있고요.(웃음) 사망률이 높긴 하지만, 개죽음이란 느낌은 안 듭니다. 그걸로 이 이야기가 불행한 이야기라는 생각도 안듭니다.
세상의 부조리나 텁텁함을 이야기하곤 있지만, 결론은 따뜻한 빛이며 푸른 하늘과 바다 내음 쪽이지 않았습니까.
아무것도 몰라서 때묻지 않았던 소녀 호. 점차 세상과 접해가면서 더욱 빛나기 시작한 호. 그걸로 충분합니다.


>개인적으론 하나키치가 마지막까지 하나키치다워서 좋았습니다. 근데 가스케 대장님한텐 좀 많이 혼나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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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otnote.
  1. 번역의 최대 쟁점이죠. 원문을 그대로 살리느냐, 우리 말로 돌아서 가느냐. 어느 쪽이 정답이라고 나와있지 않습니다. 둘 다 필요해요. 세상엔 많은 글이 있는 것처럼, 그 글에 필요한 번역도 제각각이니까. [Ba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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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9/14 02:03 2008/09/14 02:03
Posted by 유우

괴이 : 미야베 미유키

Under 감상의 늪/소설-소설가   Posted @2008/08/28 12:08

괴이 - 10점
미야베 미유키 지음, 김소연 옮김/북스피어

총 9개의 짧은 단편들로 구성된, 미야베 미유키의 에도괴담집이다. 이런 괴담집이 좋은 점은, 인과응보 구조에 충실하되 딱 잘라 원인 결과를 명명하는 것이 아니라, '그렇지 않을까?'하고 질문을 내뱉듯 던져주며 슬며시 끝나는 부분이다.

추리물을 좋아한다면서, 나는 좀처럼 응어리 하나 안 남기고 멋지게 모든 트릭이 풀리는 게 좋질 않다. 그래서 그 뒤에 남은 이들은 어찌 되었을까, 정말로 그녀의 저주였을까 혹은 우연이었을까, 사라진 그들은 대체 어디로 간 걸까. 이런 식의 응어리 한 줌 남기는 미덕이 좋다. 사건이 해결되어 어떠한 반전이 있는 것이 아니라, 그냥 '아, 그렇군'하고 일상의 조금 삐져나온 턱을 사뿐 넘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는 느낌도 좋다.
그런 이유로 도시전설이든 시대물이든 괴담집이란 건 언제라도 매력적이다.

이 책은 미야베 미유키의 그 꿀꺽꿀꺽 읽히는 가독력 있는 문장으로, 그런 매력을 한껏 살렸다. 나는 괴담집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어서, 겨울에 아랫목에서 귤을 까먹으면서 봐야 하는 이야기집과 여름에 모기향 냄새를 맡으며 수박과 함께 해야 하는 이야기집이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인데, [괴이]는 단연 후자이다. 여름에 읽기에 아주 시원시원하다.

이야기의 배치도 좋다. 만약 마지막 이야기가 <여자의 머리>처럼 정겹게 끝났다면, 재밌게는 읽었지만 괴담집을 읽고 난 느낌이 아니라 드라마를 한 편 본 느낌이었을 것이다. 실제로 마지막 이야기인 <바지락 무덤>은 다른 이야기와는 조금 취향이 다르다. 등장인물의 죽음이 어딘가 석연치 않은데다, 불합리하다. 마지막 장에선 몸이 부르르 떨린다. 누군가 공포는 바로 네 옆에도 있다고 속삭이는 것처럼. 마지막이 이렇게 때문에 책을 덮으면 재밌고 무서운 희열을 느낄 수 있다.


괴담이니까 당연히 공포는 있다. 하지만 괴담집의 진짜 매력은 역시 인간미다. 요괴가 나오면 그것은 판타지인걸까. 자세히 살펴보면 이건 인간 사는 세상이야기다. 현실에서도 어디선가 일어났음 직한 불행한 이야기에, 다소의 운치를 더했을 뿐이다. [괴이]의 9가지 단편 이야기의 주인공들은 전부 열심히 일상을 사는 평범한 사람들이다. 그 사람들이 목격한 '도깨비'들은, 마찬가지로 무척 인간적이다.

─사람으로 살아봐야, 비로소 '도깨비'가 보이게 되는 거란다.
-p.178 <아다치 가의 도깨비>

그렇다면 도깨비 또한, 사람의 마음을 가졌기 때문에 도깨비가 된 것은 아닐까. 한국의 도깨비가 구수한 인간미가 넘친다면 일본의 도깨비(鬼)는 다른 의미에서 인간적이다. 그들이 가진 부(負)의 감정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품은 마음이 아닌가. 그 나라에선 죽어서만 귀신이 되는 것이 아니라, 산 채로도 귀신이 된다. 오로지 자신의 욕심과 원한과 쾌락을 위해서, 누군가를 의심하고 시기하고 저주하고 괴롭힌다. 인간은 누구나 그렇게 마음속에 도깨비를 키운다. 그것이 인간의 인간인 이유다.
그 사실이 <아다치 가의 도깨비>에서처럼 따뜻하게 다가오기도 하고, <가을비 도깨비>에서처럼 흉측하게 다가오기도 한다. 그런 것이 인간이라고 미야베 미유키는 툭하고 던져 준다.
그와 동시에 그들이 '몹시 고독하다는 사실'(-p.86 <이불방>)도. 조심하라, 당신 옆에 당신 안에 마음의 텅 빈 그 자리에, 도깨비가 산다. 어느 날 도깨비가 훌쩍 눈을 뜨고, 당신의 목을 조를지도 모른다.


---
다른 용도로 쓴 리뷰라서 말이 반말. 옛날에 리포트도 블로그 글쓰기로 쓰면 잘 써진다는 딴 사람 글을 본 적 있는데, 진짜 워드나 한글 켜놓고 멍하니 바라보는 것보다 블로그에 쓰는 게 훨씬 잘 써지는 건 참 이상하지요.
제가 쓴 것치고 바른말 고운말인 건 다 그런 이유 때문입니다..;;;
어쨌든 <모방범>보다 훨씬 제 취향이었고요. 어쩐지 <음양사>가 생각나기도 하고, 교고쿠 씨의 괴담집이 생각나기도 하는 이야기집이었습니다.

<모방범>하니까.. 요즘 자꾸 히로미가 하시모토(세컨드 세레나데)랑 겹쳐져서 큰일이예요; 똑똑한 척 하면서 쭉쭉 미끄러지는 게 너무 하시모토스럽지 않나요T_T 아, 이런 괜한 모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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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8/28 12:08 2008/08/28 12:08
Posted by 유우